5회까지 3대0으로 패색, 9회에 역전 성공?
9회 1사 상황에서 2루, 3루 연속 도루 성공?
김상엽 감독 "선수 자체 판단으로 도루 시도"
약체로 평가받던 경주고가 전국대회에서 서울팀을 제압했다. 경주고는 6일 신월구장에서 열린 제7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개막전에서 서울 동산고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9회말 2아웃 후 짜릿한 끝내기 안타를 날려 4-3, 1점차로 승부를 갈랐다. 올해 들어 경북에 있는 4개 고교 야구팀 중 중앙무대에서 승리를 따낸 팀은 경주고가 유일하다. 동산고는 2019년 창단한 신생팀이다.
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경주고는 경기 초반 상대 선발 이민규 선수의 공을 공략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경주고가 이 선수에게 뽑은 안타는 5회까지 단 2개에 그쳤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바로 5회였다. 3대0 리드를 당한 상황에서 5회말 상대팀 이민규 투수의 2루 견제구가 빠지면서 행운의 1득점을 올렸다. 이어 6회말에는 2아웃 3루 상황에서 4번타자 이승범 선수의 우중간 안타로 다시 1득점, 3대2로 추격했다. 경기가 좀 풀린다 했지만 7회와 8회에는 무득점에 그쳤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나 했지만, 경주고는 "야구 몰라요"라는 야구계의 오랜 격언을 증명했다. 9회말 마지막 공격 선두 타자 3번 유호성 선수가 3루 내야 땅볼을 치고 전력질주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결과는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세이프였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이승범 선수였다. 6회말에 1타점을 기록한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모두가 이 선수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3번 유호성 선수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도루를 시도했다. 결과는 세이프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 선수는 다시 3루를 향해 냅다 달렸다. 상대팀 투수와 포수가 크게 당황했다. 김동휘 포수가 3루로 던진 공이 외야로 빠지고 말았다. 유 선수는 다시 한번 전력질주해 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동점이 됐다. 경주고 덕아웃은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도루 두 번으로 성공한 득점 이후 4번 이승범 선수가 좌전안타를 때려냈다. 이어 5번 안준현 선수의 희생번트와 6번 이승준 선수의 우익수 앞 안타를 기록했다. 1,3루에 주자가 나가 있는 상황에서 7번 윤지성 선수는 고의사구로 1루로 진출해 1사 만루 상황이 됐다.
여기에서 고비가 찾아왔다. 대타로 나선 황상윤 선수가 삼진으로 물러난 것. 9회말 2사 만루 상황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과 '대역전극'의 기로에 선 상황이었다. 다음 타석에 선 선수는 이유성 선수였다. 김경엽 경주고 감독의 말마따나 "양쪽 어깨에 한라산과 백두산을 얹은 채 방망이를 휘두르는 기분"이었을 것이지만 용케 중압감을 이겨내고 2스트라이크 3볼 상황까지 버텨냈다. 드디어 풀카운트, 투수와 타자는 피할 데 없는 외나무 다리에 마주하고 섰다. 이 선수는 끝내 좌중간을 가르는 끝내기 안타를 쳐냈다. 그 순간 경주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그라운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기장 옆 언덕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경주고 재경 동문 50여명과 학부모 30여명이 내지른 소리였다. 이들은 코로나19 방역 관계로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청룡기 우승 못잖은 감격과 환호가 터져나온 첫 경기였다.
김상엽 경주고 감독은 "전국대회 첫승을 성취한 선수단에게 너무 감사하다"면서 "시골에서 올라와 첫 경기여서 많이 긴장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신라인의 정신을 보여줘 기쁨이 두배"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유호성, 황세빈, 이승범 그리고 끝내기를 쳐준 이유성 선수가 오늘 너무 잘해줬고, 특히 3회 구원등판한 황세빈 투수가 8회 2사까지 무실점으로 잘 버티어 줘서 역전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다음 경기 잘 준비해서 좋은 내용의 경기로 동문과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경기 후 관계자를 비롯해 경기를 관람한 동문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부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2루와 3루 두 번이나 연속으로 도루 싸인을 보낸 이유를 물었다. "자칫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던 바, 너무 무리한 작전이 아니었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김 감독의 답변은 명쾌했다.
"그런 작전을 낸 적 없습니다! 2루에서 3루로 냅다 뛸 때 제 심장도 덜커덩 내려앉았습니다. 야구 감독 오래 하면 제 명에 못 살 것 같습니다."
다음 경기는 7월9일 12시30분 목동 구장에서 열린다. 상대는 '도깨비팀'으로 평가받고 있는 울산공고. 울산공고 야구부는 경상권 주말리그에서 강팀 킬러로 소문이 자자하다. 황금사자기 준 우승팀 대구고 역시 이 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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