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파도타기·기차여행 즐길 수 있어야죠"
교통약자 전문 여행사 '복지플랜'의 수상휠체어
“이렇게 좋은데, 눈물은 와 흘리노?” 광안리 바다에서 생애 처음으로 파도타기를 경험한 뇌병변 장애인 박철희(43)씨,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질끈 감은 눈가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난생 처음 바다를 경험한 감동 때문인지, 짠 바닷물이 눈에 들어간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눈물을 닦아 주던 활동보조사의 눈시울도 붉어지고, 목소리는 속울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그 순간 철희씨의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2일 오후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앞바다에 국내에선 보기 힘든 휠체어가 떴다. 모래사장에도 빠지지 않는 3개의 굵은 바퀴 위에 벤치가 놓인 구조다. 양쪽 팔걸이에는 부표처럼 생긴 플라스틱 공기주머니가 부착돼 있다. 튜브처럼 휠체어를 물에 띄우는 장치다. 교통약자를 위한 전문 여행사 ‘복지플랜’이 국내에 처음 도입한 수상휠체어다.
이날 이용자는 철희씨 외에 영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재웅(45), 한예순(46)씨 3명이었다.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뇌병변 심한장애인’이다. 아주 가끔 휠체어에 앉아 바다를 본 적이 있지만, 바닷물에 몸을 적시는 것은 고사하고 모래사장까지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다. 두려우면서도 들뜬 표정은 마스크도 가리지 못했다. 예순씨는 이날을 위해 난생 처음 수영복과 선글라스까지 장만했다. “억수로 좋습니까?”라는 활동보조사의 물음에 웃음이 한가득 번졌다.
드디어 바닷물에 처음으로 몸을 적시는 순간, 재웅씨의 입에서 흐느끼듯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3대의 휠체어가 파도를 탄다. 허리춤에서 가슴팍까지 일렁거리는, 기분 좋을 정도로 적당한 파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들뜬 표정은 사라지고, 셋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너울이 한 차례 지나갈 때마다 공중으로 뜬 몸이 제자리를 잡지 못해 불안한 모양이었다. 짧은 휴식 후에 2차로 들어갔을 때에야 셋의 얼굴은 다시 환해졌다. 큰 파도가 밀려들 때는 그만큼 커다란 함박웃음이 번졌다. 마흔 중반에 처음으로 경험한 바다의 짜릿함을 어디에 비할까. 동행한 활동보조사는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다들 오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며 센터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탁지혜 복지사도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제약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애인도 맛집에 가서 음식 사진도 찍고, 미용실에 가서 멋도 부리고, 펜션 가서 고기 굽고 캠핑 기분도 내고 싶지만 작은 턱 하나만 있어도 포기해야 하잖아요. 기차여행도 하고 싶은데, 관광열차에는 사실상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요.” 이날 행사를 위해서도 이동 동선을 살피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알아보느라 며칠을 준비한 터였다.
이현진 복지플랜 대표는 알고 보면 장애인 여행 수요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처음 시도한 수상휠체어 상품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300여 명이 이용했다. 올해는 500명 이상이 이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상휠체어가) 이렇게 간단해 보여도 국내에는 없어서 미국에서 대당 600만 원에 수입했습니다. 올해는 국내에서 주문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어요.” 당장 이익을 남기기 어렵지만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관광공사의 산·학·연·관 프로그램의 도움이 컸다. 상품은 복지플랜에서 기획하고, 영산대 호텔관광학부에서 연구 자문과 SNS 서포터즈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수영구청은 해변에 탈의실 겸 사무실로 사용할 컨테이너 설치를 허가하고 전기를 제공했다.
지금까지 무장애(베리어프리) 관광지 위주의 상품을 판매해왔다는 이 대표는 앞으로 장애인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1,200만 원을 들여 프랑스에서 ‘휠체어 계단 운반기’ 1대를 수입했다. “부산은 달동네를 오르내리는 계단 자체가 관광상품이죠. 올가을 ‘초량 40계단’을 첫 여행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단 중간에서 사진 찍는 게 장애인에게는 큰 로망이니까요.” 수상휠체어와 마찬가지로 아기와 임신부,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교통약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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