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아그레스트, 9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베토벤 피협 5번·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으로 사회 비판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정신을 전파한 개혁가였지만 스스로 황제에 오른 뒤 패권을 행사했다. 볼셰비키 혁명을 토대로 집권한 스탈린은 인민의 바람과 달리 공포정치를 구사했다. 이렇듯 역사에서 혁명가와 독재자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는 '왕의 두 얼굴'이라는 주제로 공연된다. 여기서 왕은 나폴레옹과 스탈린이다. 이들의 민낯과 시대상을 기록한 작품들이 선곡됐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손민수 협연)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이다.
베토벤은 원래 나폴레옹의 열렬한 팬이었다. 하지만 권력욕에 빠진 모습을 보고 실망해 마음을 접었다. 베토벤이 당초 교향곡 3번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보나파르트'로 지었으나, 생각을 바꿔 제목을 '에로이카(영웅)'로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베토벤이 머물던 오스트리아 빈을 침공, 전쟁을 벌이던 때 작곡됐다. 베토벤은 당시 상황에 대해 "주위에서는 온통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행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북소리와 대포소리, 모든 형태의 비인간적인 처참함 뿐"이라고 묘사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당국의 감시와 박해를 받았던 음악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음악에는 검열을 피하면서도 예술성을 꽃 피우기 위해 몸부림쳤던 작곡가의 고뇌가 들어있다. 교향곡 10번은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작곡된 음악이다. 자연스레 스탈린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가득하다.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이름(D-S-C-H)을 분해해 음악적 동기로 삼은 것도 유명하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지휘자 미하일 아그레스트(46)가 직접 정했다. "예술가와 독재자, 개인과 정치기구 사이의 관계"라는 불멸의 주제를 다루고 싶어서다. 아그레스트는 현재 독일 슈튜트가르트 발레단 음악감독 겸 수석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러시아인인 그는 특히 "스탈린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오늘날 러시아에 책임 있는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그레스트는 "최근 러시아에서 나온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이것이 과연 현재인지 1930년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비판했다. 일례로 최근 러시아의 유력 일간지 중 한 곳이 '소련의 강제수용소였던 '굴라크'가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먹거리와 잘 곳을 제공했으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취지의 사설을 통해 구 소련 시대를 미화한 일을 들었다.
아그레스트는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주요 메시지 중 하나는 휴머니즘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교향곡 10번을 두고 "'스탈린이 국가에 긍정적이고, 효율적인 지도자였다'는 프로파간다(선전)에 대한 그 시대의 반작용으로서 공포와 분노와 절망의 확실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아그레스트는 "예술과 음악은 단순한 오락에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위대한 작곡가들과 화가들은 지금 이 세상에 미처 일어나기도 전인 사건들을 감지하는 특별한 안테나가 있다"면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와 가치를 향해 우리 영혼을 안내하는 과정에서 음악은 때때로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아그레스트는 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공연연습장에서 관객와 대화하는 '지휘자 미하일 아그레스트에 묻다' 강연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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