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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 로펌도 감지덕지" 신입 변호사 노예 만드는 실무수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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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 로펌도 감지덕지" 신입 변호사 노예 만드는 실무수습제

입력
2021.07.05 2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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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수습 거쳐야 사건 수임 가능' 제도 악용
로펌, 수습생 착취하고 진로에도 막대한 영향
변협, '신입 변호사 미투' 눈감는 등 나 몰라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법조타운 내에 다수의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김주영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법조타운 내에 다수의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김주영 기자

"로펌 입장에선 몇 달만 기다리면 변시(변호사시험) 합격생이 또 나와요. 매번 월 200만 원 안 되는 돈으로 노동력을 쓸 수 있는 거죠."

변호사 A씨는 2018년 4월 늦은 나이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한 법무법인에서 실무수습 생활을 시작했다. 6개월 수습 기간에 A씨는 형사 접견도 재판 변론도 할 수 없는 ‘변호사 아닌 변호사’ 신세였다. 행정소송과 헌법소송 여러 건을 주도적으로 처리했지만 정작 변론기일엔 방청석에 앉아야 했다. 변호사 자격으로 법원에 출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쓴 서면조차 진술할 수 없었다.

200만 원 안팎의 월급과 이어지는 주말 근무 및 야근에도 A씨는 군소리 없이 일했다. 오히려 나이 많은 자신을 수습으로 받아줬다며 감사해했다. 그러나 4년 차 변호사가 된 지금 A씨는 "변호사 실무수습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년 변호사의 제대로 된 실무경험 기회를 막고 로펌과의 갑을 관계를 강화하는 제도"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제 발로 블랙펌 찾는 아이러니

피의자였던 로펌 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한 '신입 변호사 미투(Me Too·성폭력의 사회적 고발)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 실무수습 제도에 대한 비판이 재점화하고 있다. 로펌에서 실무 경력을 쌓아야 온전한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는 현행 제도를 악용, 수습변호사를 금전적·인격적으로 착취하는 이른바 '블랙펌(악덕 로펌)'이 적잖게 판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증언이다.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행 변호사법상 변시 합격자는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6개월 이상 일하거나 사비를 들여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서 주관하는 연수 프로그램을 마쳐야 한다. 시험에 합격했어도 실무수습이나 변협 연수를 거치지 않으면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할 수 없는 것이다. A씨는 "변호사 자격을 줘 놓고 변호사 활동은 6개월간 정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렇다 보니 변시 합격생 사이에서는 수습처를 구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로스쿨 재학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엔 블랙펌 명단이 공유된다. 실무수습을 마치면 채용 없이 곧바로 다른 수습생으로 갈아치우면서 월 150만 원 정도의 박봉에 야근·주말 수당을 주지 않으면 영락없는 블랙펌이라는 게 대체적 합의다.

아이러니한 점은 블랙펌이 꼭 기피 수습처를 뜻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A씨는 "블랙펌은 노동 환경과 처우가 매우 열악하지만, 일부 합격생들은 일부러 그런 로펌을 찾아다닌다"며 "수습처를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수습생 채용)공고를 자주 내는 곳에서 눈 딱 감고 6개월을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 제기 막는 법조계 '세평'

로펌 대표변호사의 초임변호사 B씨에 대한 성폭행 및 피의자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5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B씨의 법률대리인인 이은희 변호사가 사건 발생 및 고소 등 경위와 피해자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로펌 대표변호사의 초임변호사 B씨에 대한 성폭행 및 피의자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5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B씨의 법률대리인인 이은희 변호사가 사건 발생 및 고소 등 경위와 피해자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실무수습 기간을 끝낸 뒤 해당 로펌에 정식 변호사로 채용되는 이른바 '전환' 과정에서도 수습생 의사는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1년 차 초임 변호사 B씨는 "수습 기간을 채울 수 있게 해준 로펌 대표는 그 자체로 막강한 권력"이라며 "대표가 이상하다는 이유로 전환 제의를 뿌리친다면 정식 채용처를 찾는 과정에 어떤 소문이 돌겠나"라고 반문했다. 다른 로펌행이 확정됐다면 모를까, 수습변호사의 전환 거절은 '수습 기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꼬리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말이다.

이 때문에 블랙펌을 수습처로 삼는 '역발상'은 자칫 '자충수'로 돌아올 수 있다. B씨는 "통상 자신이 실무수습을 한 곳에서 정식 변호사로 채용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데, 수습생 입장에선 블랙펌에 잘못 걸렸다가 옮기고 싶어도 못 옮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환은 실무수습 시절의 위계 관계에 계속 예속되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신입 변호사 미투 사건'의 피해자 변호사 C씨 역시 피의자가 운영하는 로펌에서 실무수습을 마치고 정식 채용됐다가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다. 법조계에서 해당 사건을 "수습 때부터 이어진 갑을 관계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B씨는 "변호사 업계에서 C씨를 향해 '왜 그 로펌에서 계속 일했냐'며 2차 가해를 하는데, 이는 업계 현실을 모른 체하는 소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뒷짐 지는 변협에 후배들 불만

청년 변호사들은 실무수습을 의무화한 법만 있을 뿐 이를 책임 있게 주관하는 기관이 없다는 게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특히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변협이 기존 변호사 회원의 이익을 우선시하느라 수습생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실무수습 대신 변협 연수를 듣고 있다는 D씨는 "변협이 대대적 실태 조사와 블랙펌 단속에 나서긴커녕 오히려 후배들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고 말했다. 변협이 올해 변시 합격자 연수 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하려다가 당사자들과 법무부의 반발에 이를 철회한 일을 지적한 말이다. D씨는 "실무수습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연수 인원조차 줄이려고 하는 걸 보면서 변협은 후배들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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