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역사가 미슐레 '민중' 번역 조한욱 교수
웬만한 철학 고전은 국내에 번역본으로 출간돼 있지만 역사학 저작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역사가 쥘 미슐레의 '민중'도 그런 책 중 하나다. 프랑스에서 1846년 출판된 이 책은 1979년(전기호 옮김·율성사 발행) 번역돼 국내에 나왔지만 현재는 절판 상태다.
'민중'은 역사와 혁명의 주체로서 민중을 분석한 책이다. 미슐레는 민중을 '인류 미래를 위한 여정에 나설 선봉대로서, 공감과 헌신 능력이 가장 뛰어난 계층'으로 규정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이 아닌 의료진·자영업자 등이 최전선에서 묵묵히 싸우고 있는 오늘날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셈이다.
그런 '민중'이 최근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번역을 맡은 조한욱(67)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의 오랜 염원의 결실이다. 2019년 정년 퇴임 후 전공인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과 '비코 자서전'을 번역한 조 교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불어로 번역했던 미슐레의 저작에 가 있었다. 지난달 28일 만난 조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국내에 다시 출간돼야 할 당위성을 다시금 절감했다"고 말했다.
"번역을 하면 할수록 19세기 중엽 프랑스 현실을 말하는 미슐레가 지금 우리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인류 보편적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확립한 프랑스 혁명에 긍지를 갖고 있던 미슐레는 이 책에서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프랑스 각 계층 사이에 증오와 경멸이 싹트고 있음을 지적하고 꾸짖고 있거든요."
미슐레는 '민중'에서 다양한 계층 출신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당대 프랑스 현실을 바라본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미슐레는 역사가인 동시에 현실을 사는 생활인이었다"며 "'민중'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실천한 역사학 저작인 동시에 사회학적 저작"이라고 역설했다. 고고하게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가 아닌 사회 모순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인이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민중'의 번역 과정에는 지식인으로서 조 교수의 반성도 담겨 있다. 조 교수는 "미슐레가 '민중'을 쓴 것은 분열된 프랑스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정신적 힘을 공급하려는 것이었다"며 "이 같은 미슐레의 저작을 국내에 알림으로써 지식인으로서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미슐레가 책을 쓸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은 프랑스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진보적 면모를 보이며 애국하는 길인 것처럼 허위의식에 빠져 모든 것을 까발리기에 바빴다. 미슐레는 책에서 "교양인이라 자처하는 우리는 민중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알려고 힘쓴 적이 있는가"라며 "우리는 그들의 상황에서 비롯된 수없이 많은 일들로 그들을 비난하기만 하지 않았는가"라고 반성한다. 조 교수는 "오늘날의 우리가 가장 뼈저리게 들어야 할 부분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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