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젊은층 스타터홈 구하기 어려워져"
주택 마련 시기 따라 향후 자산격차도?↑

지난해 10월 미국 매사추세츠 웨스트우드의 한 주택 앞에 판매를 알리는 표지판이 내걸려 있다. AP 자료사진
미국 시카고에 사는 서맨사 베라파토(27)와 약혼자는 신혼집 마련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녔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을 통한 대출까지 해서 손에 쥔 자금은 30만 달러(약 3억4,000만원). 그러나 평수를 좁히고 점점 교외로 눈을 돌려도 석 달째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했다. 베라파토는 4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아이를 갖는 것뿐 아니라 결혼식도 미뤘다”며 “(집 외에) 모든 ‘사소한 일’들이 계속 보류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집값 탓에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접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집값 급등과 소형 주택 공급 감소가 맞물리면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스타터홈(starter home)’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 됐다고 WSJ는 진단했다.
스타터홈은 통상 130㎡ 미만의 소형 주택을 의미한다.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젊은 층이 생애 첫 집으로 선택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산 증식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청년 주거 사다리의 첫 단계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에서 스타터홈은 찾아보기가 힘들게 됐다.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공급 물량 자체가 적은 탓이다.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기관 프레디맥에 따르면, 이 나라 소형 주택 공급은 지난해 5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 문화가 확산하면서 넓고 쾌적한 중대형 주택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자, 그 여파로 작은 집 신규 물량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소형 주택을 포함, 미국 전체 집값은 끝없이 치솟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의 대표적 주택가격지수인 케이스-실러 지수는 전년 대비 14.6%나 급등했다. 1987년 지수 도입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WSJ는 “그렇지 않아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와 학자금 부채 부담 등으로 어려움이 커졌는데, (부동산마저) 젊은이들의 좌절과 절망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 집 마련에 실패한 미국 2030은 결국 결혼과 출산을 후순위로 미뤘다. 한국의 이른바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와 다르지 않다. 고교 졸업 후 빠른 독립을 장려했던 건 옛일이 됐다. 결혼 후까지 부모에 얹혀 사는 ‘캥거루족’도 적지 않다. 뉴욕주(州) 롱아일랜드의 부모님 집에서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는 매슈 리바시(35)는 “50만 달러(약 5억6,500만 원)를 마련했지만 젊은 커플이 살 만한, 적당한 가격의 소형 주택이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다”며 “우리가 가진 모든 돈을 쏟아부어도 (집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젊은 층의 집 구매 시기가 점점 늦어지는 건 필연적 결과다. 2010년 30세였던 미국인의 첫 주택 구매 평균 연령은 지난해 33세로 높아졌다. 더 커다란 문제는 젊은 층의 내 집 마련 지연이 향후 자산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싱크탱크 어반인스티튜트의 분석 결과, 25~34세에 처음으로 주택을 소유하게 된 이들은 60대 초반이 됐을 때 중위 주택 자산이 15만 달러(약 1억6,900만원)인 반면, 35~44세에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이보다 7만2,000달러가량 더 적었다. 60대에 접어들 시기, 예상 자산이 거의 두 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본인 명의의 자택 소유 여부뿐만 아니라, 언제 집을 샀느냐에 따라서 같은 밀레니얼 세대 내에서도 자산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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