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화물 차량으로 사무용품을 운반하는 60대 박모씨에겐 요즘 기름값만큼 무서운 게 없다. 지난해만 해도 리터당 1,100원대였던 자동차용 경유가 최근 들어선 1,400원선까지 치솟으면서다. 더 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속은 더 타들어간다고 했다. 5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박씨가 “오늘 아침 주유했다”고 말하며 보여준 주유소 영수증에 찍힌 경유 1리터당 가격은 1,418원으로, 약 40리터를 넣은 기름값 총액은 5만7,000원이었다. 박씨는 “지난해 이맘때면 4만5,000원 정도였을 양”이라며 “사실상 (기름값 인상분만큼) 수입이 줄어든 셈”이라고 토로했다.
오토바이로 퀵서비스 업무를 하는 40대 허모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루 300㎞ 이상을 달리는데, 올해 초에 비해 기름값으로만 김밥 한 줄 값 (약 3,000원) 정도 더 들어가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전날보다 1.23원 오른 1,612.02원, 경유값은 전날보다 1.35원 오른 1,408.79원이었다. 이틀 전 한국석유공사가 발표한 6월 5주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9주 연속 상승한 값인 1,600.9원을 찍었다. 2018년 11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리터당 1,600원을 돌파했는데, 불과 이틀 만에 10원 넘게 더 오른 것이다.
기름값의 가파른 상승세에 서민 경제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급감한 마당에 기름값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악재만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원자재와 식품 유통 비용도 올라간 가운데 3분기에 동결된 전기요금도 4분기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전체적인 생활물가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점쳐진 유가 상승에서 변곡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지난 4월부터 5월 초까지의 주간 유가상승 추이를 살펴보면 전주 대비 1원 이하씩 오르는 보합세였지만, 지난달부터 상승폭이 10원을 넘나들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미국 경제지표가 양호하고 원유 재고 감소, 예상보다 더딘 증산 가능성, 이란 핵 협상 장기화 등으로 상승세를 기록 중”이라며 유가 고공행진의 배경을 설명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산으로 여행 제한이 완화되고, 항공유 수요까지 회복되면 국제유가는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선 올해 세계 석유 수요를 전년 대비 각각 540만b/d(하루당 배럴), 595만b/d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4분기까지 수요 증가 전망에도 힘이 실렸다.
이같은 전망이 나오면서 일각에선 지금 속도라면 연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길 수 있단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두바이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던 2012년 2월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긴 점을 감안했을 때, 두바이유 가격이 최근까지 리터당 74달러를 갓 넘긴 상태라 다소 여유는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커뮤니케이션실 팀장은 "국내 유가는 국제유가 추이를 2~3주 뒤쫓아간다"며 "국내 유가를 좌우하는 두바이유 가격이 최근까지 계속 오르면서 당분간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OPEC과 비(非)OPEC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가 얼마나 감산을 완화하느냐에 따라 하반기 유가 방향성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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