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의 앙코르 선물
2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적막감을 깨고 우아한 피아노 연주에 따라 아리랑이 피어올랐다. 안단테, 아다지오풍의 은은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고유의 선율은 낭만주의 색채가 입혀지며 새롭게 태어났다. 이 곡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객석 곳곳에서는 '아!' 하고 짧은 감탄사도 터져 나왔다. 2분 남짓 짧은 연주였지만 대공연장에 있던 관객들은 있는 힘껏 박수를 치며 감동을 표현했다.
아리랑 연주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였다. 이날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협연자로서 무대에 오른 뒤 앙코르 무대로 아리랑 편곡본을 준비한 것. 그가 본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대한 랩소디'를 성공적으로 연주한 직후였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선율을 활용한 24개 변주곡의 매력을 보여준 뒤 선곡한 아리랑의 변주는 라흐마니노프의 격정과 대조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허프는 지난 2월 발매한 자신의 앨범 'VIDA BREVE'에도 이날 연주한 아리랑을 수록했다. 허프는 아리랑에 대해 "이 선율의 심플함과 솔직함, 부드러움을 사랑하게 됐다"며 "우리의 짧은 삶의 소중함을 그린 음악과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앨범 발매에 앞서 그는 2019년에도 함신익과 심포니송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에서 아리랑을 연주,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허프와 서울시향의 협연은 3일 오후 예술의전당에서 또 한 번 열린다.
허프의 아리랑 연주 꼭 1주일 전인 지난달 25일 같은 콘서트홀에서 또 한번의 아리랑 연주가 있었다. 그때도 앙코르 무대에서였다. 주인공은 지난달 첫 한국 데뷔 무대를 치른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였다. KBS교향악단과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뒤였다.
허프가 유려한 아리랑을 들려줬다면, 퀸트는 야성적이고 독특한 선율의 아리랑 해석을 선보였다. 분명 아리랑이었지만, 2개의 바이올린 줄을 동시에 연주하며 화음을 만들어내는 겹음(더블스톱)이 대거 쓰이면서 기교적인 느낌을 남겼다. 독창적인 해석을 지향하는 연주자의 정체성이 배어있는 아리랑이었다.
특히 퀸트의 아리랑은 외국인으로서 한국으로부터 받은 따뜻한 환대 속에서 탄생한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퀸트는 내한 공연을 위해 입국한 직후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2주간 시설격리를 했는데, 이때 시설 직원들의 따뜻한 배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퀸트는 격리생활을 하는 동안 손수 아리랑을 편곡했다. 퀸트는 앙코르 연주에 앞서 무대 위에서 "한국인을 위한 작은 선물"이라고 곡을 소개했다.
외국인 연주자의 아리랑 연주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래퍼토리다. 하지만 진심이 담겼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코로나19로 해외 연주자들의 공연이 흔치 않은 상황에서 이들의 아리랑은 반갑고 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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