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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온몸이 찢겨 죽다 살아났는데, 사고 이유도 몰라요"

입력
2021.07.06 04:30
수정
2021.07.06 09:3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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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방치되고 있는 '유령 중대재해'
대형사고에 현장 조사도 처벌도 없어
시력, 신장손상, 기억상실 등 후유증?
산재조사표엔? '골절', 사고원인 '근로자 탓'

서하연·장상국씨(가명) 부부가 지난달 9일 경남 김해시에 있는 집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해=왕태석 선임기자

서하연·장상국씨(가명) 부부가 지난달 9일 경남 김해시에 있는 집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해=왕태석 선임기자

"남편을 그만 보내줘야 할 것 같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병원으로부터 세 차례나 들었어요."

지난달 9일 경남 김해시에서 만난 서하연(가명·36)씨는 마른 침을 삼키며, 2년 전 남편이 당한 일터에서의 사고를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2019년 7월 30일 서씨는 집에서 멀지 않은 페인트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남편 장상국(가명·38)씨가 크게 다쳐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서 마주친 남편은 그날 오전 출근할 때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남편은 온몸이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병원에선 페인트 제조기계의 칼날 모양 믹서에 남편이 머리와 몸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서씨는 "속옷을 보고서야 겨우 남편인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의사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남편 분께서 수술 중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고, 서씨는 "꼭 살려만 달라"고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장씨는 응급수술로 고비를 넘겼지만 하루하루가 위태로웠다. 사고 후 2주 동안 병원에선 세 차례나 장씨에게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내렸다. 서씨도 남편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장례식장까지 알아보는 등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남편은 생각보다 강했다. 장씨의 심장은 끈질기게 뛰었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서씨에게 "남편 분께서 살아날 줄은 1%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미안해했을 정도였다. 장씨는 젊은 시절 전문 보디빌더로 활약했을 정도로 건강했다. 페인트 제조공장을 다니면서도 헬스 트레이너로 '투잡'을 할 정도로 꾸준히 몸관리를 했다. 서씨는 "보디빌더 시절 근육을 가꿀 때 자신의 몸을 한계치로 몰고 갔던 그 힘이 꺼져 가던 생명의 불씨를 살린 것 같다"며 남편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은 컸다. 투병 중 항생제를 쏟아부은 탓에 평생 신장 투석을 해야 할 상황이다. 양쪽 눈은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나빠졌고 후각도 둔해졌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뇌 손상을 입은 탓에 자신이 방금 했던 말도 잊어버리는 심각한 기억상실 증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서씨도 남편을 간병하면서 디스크와 불면증 등 온갖 병을 얻었다. "지난 2년을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물었더니, 서씨는 그냥 버틴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가 있을 수 없죠. 이유가 있다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거든요."

서씨는 식탁에서 인터뷰하던 중 잠시 양해를 구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남편이 배고플 시간이라며 떡을 준비했다. 간식을 차리며 서씨가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날 사고 후 남편 장씨는 아내 서씨를 "엄마"라고 부른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무슨 회사였지요?" "침대 만드는 회사요."

"그래요? 무슨 침대를 만들었어요?" "의료기기요."

"의료기기요? 그럼 다음에 우리 집에도 하나 갖다 줘요."

아내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며 아이처럼 떡을 먹는 남편을 바라보던 서씨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다.

왜 사고가 났는지 알 수가 없다

서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사고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의 사고 경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사고가 난 공장은 사업주와 경리직원, 남편 등 3명이 일하던 영세 사업장이다. 남편은 혼자 작업하던 중 사고를 당했고 현장엔 폐쇄회로(CC) TV도 없었다.

사고 처리 과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분쇄기나 파쇄기, 혼합기 등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는 덮개나 안전울 등 보호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장씨 사고 당시 이런 조치들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일보 취재 결과 사고 후 해당 사업장에 대한 고용노동부 차원의 조사는 아예 없었고, 사업주에게도 작업 중단이나 과징금 등 어떤 처분도 내려지지 않았다. 서씨가 업무상과실치상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로 직접 해당 사업주를 고소해 현재 민형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하연씨 휴대폰에 담긴 남편이 사고를 당한 작업장의 모습. 김해=왕태석 선임기자

서하연씨 휴대폰에 담긴 남편이 사고를 당한 작업장의 모습. 김해=왕태석 선임기자

일터에서 목숨을 앗아갈 뻔한 대형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고용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이유는 뭘까. 현행 산안법에서 중대재해 범위를 △사망자가 1명 이상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지체 없이 고용부에 신고해야 한다. 고용부는 현장 조사를 통해 재해조사 의견서를 작성하고, 조사 과정에서 산안법 위반 혐의가 발견되면 사건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다.

장씨는 단독 작업 중 다친 탓에 중대재해에 포함되지 않아 사업주 신고도 없었고, 고용부도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재해조사 의견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으로도 이런 '유령 중대재해' 문제를 해결하긴 힘들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하는데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산안법보다 중대재해 범위가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해야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한다.

노동·인권 전문가인 권영국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은 산안법의 특별법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산안법보다 더 완화해서 규정하긴 힘들다"며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기존의 산안법을 먼저 개정해 중대재해 기준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실 산업재해조사표 나몰라라 고용부

전문가들은 산업재해조사표 제도만 제대로 시행돼도 '유령 중대재해' 사고 발생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안법상 근로자가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리면 사업주는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고용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때 사업주는 산업재해조사표에 사업장 정보 외에 재해정보와 발생 개요 및 원인, 재발방지 계획 등을 기재해 근로자 대표 확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용부의 무관심 속에 부실한 조사표가 양산되면서 이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한국일보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장씨의 산업재해조사표에는 상해종류(질병)는 '골절'이라고 간단히 표시됐고 근로자 대표 서명도 공란이었다. 사고 원인은 '작업자세, 동작의 결함으로 인하여 ON 되어 있는 기계를 OFF로 된 상태로 착각하며 작업이 이뤄져 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사고 원인은 기계·설비적 요인, 인적 요인, 작업적 요인, 관리적 요인을 모두 분석해서 써야 하는데, 장씨 사례를 보면 근로자 부주의에만 초점을 둬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산업재해조사표의 70% 이상이 이처럼 허술하게 작성되는데 고용부는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양산고용노동청 측은 이에 대해 "솔직히 산업재해조사표는 사고 개요 정도를 파악하는 용도로, 지침에 맞게 작성됐는지 다 걸러낼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동청 해명과 달리 산업재해조사표는 기업이 산재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 사업장 자체적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데 활용하고, 정부 역시 안전 관리가 취약한 사업장을 파악해 산재를 예방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장씨가 당했던 사고의 경우도, 근로감독관이 조사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면 사업장이 영세하고 안전 조치가 소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현장 조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진우 교수는 "산업재해조사표가 재해 예방을 위한 기초 자료로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건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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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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