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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김은숙의 기부맛집... 김치찌개 끓이는 신부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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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김은숙의 기부맛집... 김치찌개 끓이는 신부를 아시나요

입력
2021.07.02 04:30
수정
2021.07.02 10:3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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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간' 이문수 신부

이문수씨는 청년을 위해 밥을 짓는 신부다. 사제복도 입지 않고 캐주얼한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 이 신부가 지난달 28일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내 '청년식당 문간'에서 끓인 김치찌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뒤로 보이는 하얀색 김치 냉장고는 시민이 최근 기증했다. 배우한 기자

이문수씨는 청년을 위해 밥을 짓는 신부다. 사제복도 입지 않고 캐주얼한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 이 신부가 지난달 28일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내 '청년식당 문간'에서 끓인 김치찌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뒤로 보이는 하얀색 김치 냉장고는 시민이 최근 기증했다. 배우한 기자

'마음을 나눕니다'.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의 한 허름란 상가 1~2층 계단 왼쪽엔 이런 문구가 적힌 10kg쌀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의 대본을 쓴 김은숙 작가가 보낸 쌀이었다. 김 작가는 두 번에 걸쳐 10kg 쌀 총 100포대를 보냈다. 수신지는 상가 2층에 있는 60㎡(18평) 넓이의 김치찌개집. 방송인 유재석도 이 가게에 5,000만원을 최근 기부했다. '기부 맛집'의 정체는 '청년식당 문간'. 가톨릭 사제인 이문수(47)신부가 만든 김치찌개를 1인분에 3,000원에 파는 식당이다.

값은 저렴하지만 음식은 실하다. 진한 육수에 잘 익은 김치,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는 식당 인근에 사는 청년들 사이 입소문이 난 지 오래다. "여러 번 오시던 청년 한 분이 한 번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저 김치찌개 1,000원 어치만 먹어도 될까요?'라고 하더라고요. 편하게 드시라고 했죠." 이날 가게에서 만난 이 신부의 말이다. 문간 벽엔 '자취생들의 희망! 잘 먹고 갑니다' '이것은 밥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또 세 그릇 먹었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드라마 '도깨비' 등을 써 유명한 김은숙 작가가 '청년식당 문간'에 보낸 쌀. 양승준 기자

드라마 '도깨비' 등을 써 유명한 김은숙 작가가 '청년식당 문간'에 보낸 쌀. 양승준 기자


'청년식당 문간' 벽엔 청년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붙여 놓은 메모지가 빼곡하다. 양승준 기자

'청년식당 문간' 벽엔 청년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붙여 놓은 메모지가 빼곡하다. 양승준 기자

이 신부는 2017년 12월 문간의 문을 열었다. 2015년, 고시원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난 청년 얘기를 들은 게 계기가 됐다. 이 신부는 "어르신이나 노숙인, 결식 아동을 위한 급식 지원은 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을 위한 식당은 없어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짜로 밥을 주면 한참 주위 시선에 예민한 청년들이 눈치보여 오지 못할까봐 대신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운영 방식을 택했다.

개업 첫 해 운영은 가시밭길이었다. 첫 달엔 약 250만원의 적자가 났다. 월세와 운영비 등을 메우려면 하루 매출이 30만원은 넘어야 하는 데, 손님이 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손님이 전년 대비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반복되는 위기마다 문간을 지킨 건 도움의 손길이었다. 이 신부는 "전라도 광주에 있던 땅을 판 돈 전부(5,000만원)을 보내주신 분도 있다"고 했다. 땀으로 이 식당을 지원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김찌찌개를 먹기 위해 우연히 이 식당에 들른 한 청년은 뒤늦게 이 식당의 운영 철학을 알고 서빙을 자원했다. 이런 관심을 밑거름으로 이대역 인근엔 문간 2호점이 이달 새로 들어섰다.

서울 성북구 소재 적조사에 이문수 신부의 세례명으로 복을 기원하는 등불이 걸려 있다. 독자 제공

서울 성북구 소재 적조사에 이문수 신부의 세례명으로 복을 기원하는 등불이 걸려 있다. 독자 제공

나눔은 종교의 벽을 허문다. 문간엔 그 흔한 성모상도 없다. 이 신부는 사제복인 로만 칼라도 입지 않는다. 인근 적조사엔 이 신부의 세례명(가브리엘)이 적힌 등불이 걸려 있다. 그가 2018년부터 이 절에 동원수산에서 지원 받은 고등어로 나눔을 해온 결과다.

"기도실이 아닌 식당에 나와있으니 많은 분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더 자세히 보여요. 문간이 청년들에 위로와 희망을 주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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