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의 과학' 저자는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시기에는 친구에게 소홀해지기 쉽지만 중년이 지나면서 다시 친구의 역할이 커진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친구야, 나야?"
사랑과 우정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TV 드라마 속 흔한 연인의 대화는 답이 정해져 있다.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것은 사랑보다는 주로 우정이다.
하지만 '우정의 과학'을 쓴 과학 저술가 리디아 덴워스라면 다른 답을 내놓을지도모르겠다. "우정이 인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믿는 덴워스는 이 책에서 "친구라는 긍정적 유대 관계를 삶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정의 과학'은 우정이라는 사회적 유대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탐구한 책이다. 혈연이나 사랑으로 맺은 관계에 비해 과학 분야에서 소홀하게 다뤘던 우정의 기원과 진화를 밝혀내려는 시도다.
인류는 언제나 무리 지어 살았고, 무리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구성원끼리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힘든 시기에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는지, 편안한 시기에 누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즉 친구를 사귀어야 했다.
책에 따르면 스트레스와 만성 질환의 관계가 밝혀지기 시작한 20세기 들어서야 우정을 포함한 인간관계가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신체적 건강이 우정 같은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정신 나간 소리로 여겨졌다.
이에 저자는 우정이 행복과 정서적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이를 밝혀내기 위해 사회심리학·신경과학·면역학·유전학 등의 여러 성과를 모았다.
1998년 미 펜실베이니아주(州)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런대에 재직 중이던 심리학자 셸던 코언은 관계의 다양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27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은 호텔에 투숙해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 있는 점비액을 받고 거의 일주일 동안 격리됐다. 이들은 격리 전 평균 2주 동안 배우자, 부모, 자녀, 친족, 이웃, 친구, 동료 등과 접촉했는지 여부를 기록해 제출해야 했다. 결과는 다양한 사회적 유대를 맺은 사람일수록 감기에 덜 걸렸다.
1999년 사회심리학자 존 카시오포와 루이즈 호클리는 시카고의 장년층 거주자 229명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연구했다. 외로움이 수면 부족과 사망률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인류뿐아니라 영장류·양·돌고래에게도 우정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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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과학' 저자는 우정이 육체적 건강에도 중요함을 밝혀내기 위해 개코원숭이 등 동물의 우정도 탐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1954년 영국 정신의학자 존 볼비가 동물행동학자 로버트 힌데와 손잡고 애착이론을 완성한 것을 본격적 '우정의 과학' 연구로 꼽았다.
저자는 특히 우정의 진화론적 접근 방식에 주목했다. 학계는 인간은 물론 영장류, 양, 돌고래, 심지어 물고기에게도 우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잇따라 밝혀냈다. 저자는 우정을 '인간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적 산물'이 아닌 "유전자(DNA)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책은 상당 부분을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 근처의 작은 섬 '카요 산티아고'에 사는 히말라야원숭이와 케냐의 개코원숭이 연구를 소개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 원숭이 연구를 맡은 동물 생물학자들은 저자와 만나 동물들 사이의 가장 기본적 형태의 관계가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카요 산티아고에서 히말라야원숭이를 연구하는 로런 브렌트는 "우정이란 무엇인지 깊이 고찰하면서 우리는 다른 종에게서 우정을 찾기 시작했다"며 "인간과 인간 사회를 넘어선 영역에 어떤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저자는 과학적 연구 성과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에밀 뒤르켐,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철학자들의 우정과 관련한 이론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과학·인문학적 연구 성과와 더불어 우정과 관련한 개인적 체험 등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우정의 과학'이 여러 학자들의 협업, 즉 '과학자들의 우정'의 결실이었다는 해석도 흥미롭다.
저자는 무엇보다 "우정은 선택도, 사치도 아니다"라며 "우정은 성공하고 번영하는 우리의 능력에 중요한 필수 요소"라고 강조한다. 과학적 글쓰기를 표방하지만 오히려 우정에 관한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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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과학·리디아 덴워스 지음·안기순 옮김·흐름출판 발행·448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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