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도착한 인천항 연안부두. 오후 3시 즈음, 항구 인근에는 선박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어림잡아 70~80척. 어민들이 이용하는 어선부터 바다낚시꾼을 위한 관광선, 대형 무역선의 항구 정박을 돕는 예인선, 물고기 모양의 유람선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평범하면서도 부산한 항구의 한쪽 풍경에는 한숨이 나왔다. 방파제에 폐부표ㆍ밧줄ㆍ페트(PET)병ㆍ비닐봉지 등이 어지럽게 버려져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인천항 인근 해역은 전부 경제 활동 구간이에요. 무역항로와 어장뿐이죠. 어업에서 나오는 폐어구, 무역선과 산업단지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 김포ㆍ인천에서 한강을 따라 흘러 들어오는 생활폐기물이 전부 인천항 일대로 모입니다." 조찬연 해양환경공단 인천지사장의 설명이다.
이런 폐기물들은 해양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다. 해류를 따라 이동해 쓰레기섬을 만들기도 하고, 바다에 가라앉은 폐어구 탓에 해양생물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해마다 어획량이 감소하는 배경으로 남획ㆍ기후위기와 더불어 해양 폐기물이 꼽히는 이유다. 항로로 떠내려온 밧줄이 선박에 걸리는 사고가 하루에 한 건꼴로 발생하기도 한다.
해양수산부는 전국의 해양쓰레기 중 40%가 육지로부터 하천을 통해 들어오고, 약 60%가 폐어구ㆍ양식장폐기물 등 해상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올해 해수부는 619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해양 폐기물들을 수거하고 있다. 산하 공단 선박을 이용하기도 하고 민간 업체에 위탁해 해저에 깔린 폐기물을 끄집어 올리기도 한다. 또 지자체들도 별도로 예산을 들여 해안 폐기물을 수거한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해양환경공단 인천지사의 해양 부유쓰레기 수거사업에 동참해봤다. 수거 작업은 중장비를 동원해야 할 만큼 쉽지 않았고, 막대한 폐기물을 처리할 시설도 마땅치 않았다. 전문가들이 “쓰레기 발생원을 방치한 채 수거를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이유다.
폐기물 찾아 항해… 부표 하나 줍는데 중장비 동원
이날 수거 작업은 청항선(청소용 선박)인 ‘인천 937호(149톤)’를 타고 진행됐다. 오후 3시30분쯤 해양환경공단 인천지사에서 출발해 인천대교ㆍ인천신항(남항)ㆍ인천북항을 거쳐 다시 지사로 복귀하는 순서였다.
선박에 육중한 중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청소를 하러 가기보단 대형 토목 공사를 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폐기물을 집어 올리는 4, 5m 길이의 대나무 작살, 뜰채가 여러 개 눈에 띄었다. 또 컨베이어 벨트 원리를 이용해 해수면에서 폐기물을 실어 올리는 ‘필터벨트’와 무거운 폐기물을 집어 들 수 있는 소형 크레인이 탑재돼 있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쓰레기를 건지는 작업은 많은 장비와 노동이 든다.
더구나 ‘물때’가 맞아야 많은 쓰레기를 만날 수 있다. 해양 폐기물은 해수면이 높고 바람이 일정하게 불 때 대량으로 수거할 수 있다. 물이 높아야 해안 여기저기 흩어진 폐기물이 해양 표면에 뜨고, 바람이 일정해야 조류를 타고 한 장소에 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때가 맞는 날은 많지 않다. 보통은 폐기물이 해안이나 방파제 등에 산발적으로 퍼져 있다. 선원들은 "폐기물이 흩어졌다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특히 항로로 떠내려 온 로프나 스티로폼을 놓쳐 수거하지 못하면 선박 운항에 지장을 준다”고 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3년간 선박 프로펠러에 로프가 감기는 사고는 1,120건이나 발생했다.
이날도 물때가 안 맞았다. 항해를 시작한 지 수십 분이 지나도 비닐봉지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 탓에 처음으로 바다 멀리 하얀색 스티로폼 부표가 보이자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실제 폐기물을 수거하는 과정과 걷어 올린 부표를 보자 이런 마음이 싹 가셨다.
1m 남짓한 스티로폼 부표 1개를 줍기 위해서 선원 4명이 붙어야 했다. 폐기물 근처에 선박을 고정시키는 데만 1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어 선원들이 작대와 뜰채로 부표를 주워 올리려 했지만 부표가 너무 무거워 건질 수 없었다. 결국 필터벨트를 가동시킨 후에야 부표 한 개를 겨우 건졌다.
건져 올린 부표는 이미 절반 정도가 사라진 후였다. 작은 알갱이로 이뤄진 스티로폼이 오랜 기간 바다를 표류하며 바스라진 것이다. 이렇게 바다로 흘러간 스티로폼 알갱이는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이날 건진 부표 6개 모두 30% 이상 뜯겨나가 있었다.
해수부는 유실된 부표가 매년 약 200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전체 연안 해양플라스틱 폐기물의 약 55% 규모다. 2018년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에 따르면, 인천은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2번째로 높다. 다만 해수부는 "맨체스터대의 연구가 모든 국가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실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조찬연 지사장은 "폐어구 유실은 10년 넘게 해양폐기물 문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했지만 체계적인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며 "수거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발생원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항해를 시작한 지 1시간30분쯤 지나 북항으로 이동하는 경로에서는 산업단지에서 흘러 나온 산업폐기물이 눈에 띄었다. 펄프용으로 보이는 폐목재를 건졌고, 화학공장에서 흘린 것으로 보이는 폐드럼통이 발견되기도 했다.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메틸프로판디올을 담았다는 표지가 적혀 있었으나 내용물은 비워져 있었다.
수거한 폐낚시대ㆍ부표ㆍ플라스틱은 재활용도 불가
오후 5시30분쯤 배에서 내린 후 해양환경공단 인천지사 앞 폐기물 집하장으로 이동했다. 지사 앞마당에 20톤 규모 컨테이너 3개를 설치해 뒀는데, 이 중 1개가 가득 차 있었고 나머지 2개에도 절반 정도 폐기물이 남아 있었다.
공단이 지난해 인천 앞바다에서 수거한 부유 폐기물은 1,091톤이다. 전국 12개 지사 중 3번째로 많다. 별도로 인천시가 수거한 폐기물까지 합치면 수거량은 훨씬 늘어난다. 인천시에 따르면, 2019년 해안 등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약 5,540톤에 달한다.
조찬연 지사장은 “폐기물이 워낙 많아 수거업체의 처리 속도가 따라오질 못한다”며 “해수부에서 지원하는 폐기물 처리 계약단가가 너무 낮아 입찰을 해 오는 수거업체를 찾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폐기물은 크게 폐어구와 생활 플라스틱 폐기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흰색 스티로폼으로 된 폐부표였다. 이밖에 어업용 밧줄, 관광객이 버리고 간 낚싯대와 낚싯줄도 눈에 띄었다. 이 같은 낚시 쓰레기가 바다에 가라앉으면, 아무 이유 없이 해양생물이 죽는 ‘유령어업’이 발생하게 된다. 유령이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폐어구에 해양생물이 갇혀 죽는 것을 의미하는데, 전체 어획량의 약 10%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폐비닐, PET병 등 폐플라스틱도 적지 않았다. 폐비닐 중에는 10리터 크기의 투명 비닐에 잡다한 생활폐기물이 담겨 있기도 했다. 조찬연 지사장은 “육지에서 버린 것이 한강을 타고 흘러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지난해 사단법인 '동아시아 바다공동체 오션'은 해수부 위탁을 받아 1년간 해안 폐기물 구성비를 조사했다. 전국 40개 해안(해안별 폭 20m)에서 2개월 단위로 6회에 걸쳐 조사했는데, 발견된 쓰레기 중 약 83.0%(2만6,209개)가 플라스틱(스티로폼 포함)이었다.
최근 3년간 조사한 자료를 종합하면 △어업용 밧줄(11.3%) △스티로폼 파편(10.9%) △음료수병ㆍ뚜껑(10.0%) △단단한 플라스틱 파편(9.3%) △스티로폼 부표(5.4%) △포장비닐(4.3%) △비닐봉지(4.2%) 순이었다.
대부분 플라스틱이지만 해양폐기물은 재활용되지 않는다. 부표인 하얀 스티로폼은 원래 재활용이 잘되는 재질인데, 바닷물의 염분 등 각종 물질로 오염된 탓에 재활용 품질이 떨어져 재활용업체에서 받질 않기 때문이다. 인천지사에서 수거된 폐기물도 전부 매립ㆍ소각된다.
'친환경 부표'도 결국은 플라스틱, 해법은?
2019년 해수부가 전국에서 수거한 해양폐기물은 약 10만8,644톤에 달한다. 이밖에 지자체에서도 △전남 3만1,704톤 △제주 1만6,112톤 △강원 6,837톤 등을 수거했다. 지자체와 해수부 간 명확한 통계 지침이 없어서 한해 국내에서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폐기물이 수거됐는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폐기물 배출원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해양폐기물 정화사업을 하면서도, 정작 폐기물 발생의 원인인 폐어구ㆍ플라스틱 처리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이다.
해수부도 시도는 하고 있다. 내년부터 어구에 보증금을 매기고 사용 후 반납하면 돌려주는 ‘어구 보증금제’가 시행되지만, 아직 보증금 액수가 안 정해졌고 어민 반발이 거세 적극적인 반납을 이끌 수 있을 정도의 보증금이 부과될지 미지수다.
또 ‘친환경 부표’ ‘생분해 부표’ 등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 재료가 플라스틱이고 100% 분해가 되지 않아 근본적 대책과는 거리가 있다. 쉽게 미세 알갱이로 뜯겨나가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 분해가 되어 스티로폼 부표보다는 환경 영향이 적다고 해도, 회수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이 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 탓에 환경운동연합, 오션 등 환경단체들은 '어구 실명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어민들이 실명으로 어구를 등록하게 하고, 폐어구를 지정 장소에 반납하도록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2016년 해수부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어구관리법 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어민 반발 등에 밀려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폐기물 집하장을 나오니 인천항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오랜 기간 청항선과 폐기물 집하장에서 뒹군 탓에 몸에 밴 악취를 뒤로하고 낙조를 즐겨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방파제 주변에 여전히 폐기물이 많았고 그 주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먹이를 찾는지 하얀 스티로폼 박스를 부리로 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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