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검사 공무상 비밀누설' 영장 건너뛰고 별건 조사한 경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단독 '검사 공무상 비밀누설' 영장 건너뛰고 별건 조사한 경찰

입력
2021.07.01 04:15
8면
0 0

의료법 위반 혐의로 확보한 휴대폰서 별건 인지
'즉시 영장 신청' 원칙 어긴 채 관련자 조사 강행
뒤늦게 신청했다가 검경 대립 초래…수사는 답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전경.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전경. 연합뉴스

검사의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둘러싸고 최근 검경이 갈등을 빚은 가운데, 경찰의 영장 신청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사건의 압수물에서 비밀누설 의혹을 인지하고도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사건 관계인들을 불러 조사한 것이다. 경찰이 위법한 별건 조사를 벌인 셈으로, 내부 감찰 및 징계가 따라야 할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별건 포착하고도 즉각 영장 신청 안 해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JW중외제약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지난해 12월 의료법 위반 혐의로 중외제약 직원 A씨의 휴대폰을 압수했다. 경찰은 올해 3월 말 이 휴대폰에 저장된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와 또 다른 직원 B씨의 통화 녹취 파일에서 현직 검사가 해당 변호사에게 수사 관련 비밀을 누설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했다. 수사 중인 사건과는 다른 범죄 혐의, 이른바 별건을 인지한 것이다.

해당 녹취 파일을 별건 수사를 위한 증거로 쓰려면 즉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했지만, 경찰은 한 달 이상 흐른 5월 초에야 검찰에 영장을 신청했다. 이는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대법원은 2015년 '압수물 탐색 과정에서 별도 혐의 관련 정보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 수사기관은 추가 탐색을 중단하고 별도 혐의 영장을 받았을 때에 한해 적법하게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압수물에서 혐의와 무관한 정보를 임의로 출력하거나 복제하는 것 또한 영장주의에 반하는 위법 행위라고 판시한 바 있다.

경찰은 즉각 영장 신청에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 "녹취 파일을 처음 접했을 땐 대화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영장을 신청할 정도의 별도 혐의라고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A씨 휴대폰이 의료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압수한 것인 만큼, 경찰이 별건 혐의를 의심했다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즉시 압수물 탐색을 중단하고 영장을 신청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찰은 의혹 포착 한 달 후인 4월 말 A씨를 불러 '별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것이니 참여하라'고 고지했다. 경찰은 A씨의 당사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압수목록을 제시하고 참여권을 고지하는 것은 영장을 집행할 때의 절차로, A씨는 고지를 받은 것 자체로 압박을 느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경찰은 같은 날 전관 변호사와 대화한 당사자인 B씨를 불러 녹취 파일을 재생해 들려주며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수사 증거로 활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308조의 2에 비춰볼 때 위법 소지가 다분한 수사 행위인 셈이다. 실제 검찰 측은 "사건 관계인을 불러 녹취 파일을 재생하는 것은 압수 행위를 마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라며 "결국 위법 수집한 증거를 이용해 불법 수사를 한 셈"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전경.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전경. 뉴스1


검경 '위법 증거' 공방 속 수사는 제자리

수사기관 안팎에선 경찰이 지난해 12월 발부 받은 영장으로 압수한 휴대폰을 수개월간 돌려주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법원은 영장을 발부하면서 별지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체 없이 반환하고 휴대폰을 반출한 날부터 10일 이상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명시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자료가 방대해 분석에 시간이 걸렸고 별건 의혹으로 필요한 사정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런 정황 때문에 지난달 초 경찰이 영장을 청구했을 때 "위법 수집 증거에 따른 불법 수사"라며 반려했다. 경찰은 "위법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서 받아봐야 한다"고 맞섰다.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해도 실체적 진실 규명의 필요성이 고려돼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결국 경찰의 신청으로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가 사상 처음 소집됐지만, 심의위는 지난달 말 '영장 청구 부적정' 결정을 내려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그사이 경찰이 관심을 보였던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 수사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검찰은 직원 A씨로부터 휴대폰을 다시 임의제출 받을 것을 경찰에 권고했다. 경찰은 당사자가 제출을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수사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검경 간 극한 대치로 이어진 이번 사안을 두고 법조계에선 경찰의 위법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압수 당시 혐의와 관계없이 압수물 관련 조사를 하면서 추가 영장 신청을 타진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며, 압수물 탐색 제한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봤다. 그는 "위법 수집된 증거로 뒤늦게 영장을 청구한다고 해도 하자가 치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압수수색 대상자에 대한 손해배상 또는 경찰 내부 감찰·징계도 가능할 사안"이라고 짚었다.

이유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