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학교터 원주민 아동 유해 대거 발견?
정치권 "정부 손에 희생 아이들 추모해야"
가톨릭 대표해 교황에 사과 요구도
캐나다에서는 매년 건국기념일마다 불꽃놀이나 콘서트 같은 이벤트가 풍성했지만, 올해만큼은 조용히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캐나다 정부가 운영했던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원주민 아동의 유해가 집단 발굴된 탓이다. 정치권과 시민들은 부끄러운 학대의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며 희생자 추모를 위해 건국기념일 행사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캐나다 전역에서 7월 1일 건국기념일 행사를 취소하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 오타와에선 매년 야외 콘서트와 뮤지컬이 열리고, 저녁에는 불꽃놀이가 진행됐지만 올해는 가상 기념 행사로 대체됐다. 행사를 주관하는 스티븐 길보 캐나다 유산부 장관은 “올해는 캐나다의 날을 축하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의 지역에선 행사가 아예 취소되기도 했다.
올해 캐나다의 날을 기념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아동 유해 1,000여 구가 발견된 사건의 후폭풍 때문이다. 지난달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의 학교 터에서 215구의 아동 유해가 발견됐고, 이달 24일에는 새스캐처원주 학교 부지에서 아이들 751명이 매장된 사실이 드러났다.
캐나다 사회는 가혹했던 원주민 기숙학교의 참상을 보여준다며 충격에 빠졌다. 캐나다는 1883년경부터 약 100년간 정부와 가톨릭 교회의 주도로 기숙학교를 운영했는데, 목적은 원주민 아이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는 것이었다.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거나 원주민 문화를 지키는 것은 금지됐으며, 규정을 어길 경우 체벌과 학대가 이어졌다. 2008년 캐나다 정부는 진실과화해위원회를 꾸려 원주민 기숙학교 학대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약 15만 명의 아동이 기숙학교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4,100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했다.
유해가 발견되자 바비 캐머런 서스캐처원 원주민 추장은 “목숨을 잃은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올해 캐나다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캐나다 정부의 손에 희생된 어린이들을 생각해보자”고 촉구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이번 캐나다의 날은 추모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에 공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라며 원주민 사회에 공식 사과했다.
트뤼도 총리는 기숙학교 운영에 참가한 가톨릭에도 책임이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트뤼도 총리는 2017년에도 교황에게 “원주민 아동학대를 사과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교황은 이달 4일 “캐나다에서 전해온 소식에 경악했다”면서도 특별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은 올해 12월 바티칸을 찾아 교황에게 공식 사과를 요청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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