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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타는 여자, '용감하다'고요? 그거 칭찬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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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타는 여자, '용감하다'고요? 그거 칭찬 아녜요"

입력
2021.07.01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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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바이크' 쓴 김꽃비?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 타고' 쓴 유주희

바이크 타는 두 명의 여자, 유주희(왼쪽) 서울경제 기자와 김꽃비 배우를 24일 만났다. 이날 둘은 각각 SYM 울프125와 가와사키 W800를 몰고 왔다. 한진탁 인턴기자

바이크 타는 두 명의 여자, 유주희(왼쪽) 서울경제 기자와 김꽃비 배우를 24일 만났다. 이날 둘은 각각 SYM 울프125와 가와사키 W800를 몰고 왔다. 한진탁 인턴기자

'모터 바이크’, 그리고 ‘여자’. 두 단어는 오랫동안 낯가리는 사이였다. 할리데이비슨 안장 위는 대개 남자들 차지였고, 여자들의 자리는 그 옆에 비스듬히 기대 서거나 뒤에서 운전자의 허리를 감싸 안는 거였다.

그랬던 바이크 안장의 허들이 낮아졌다. TV에서는 요리 연구가인 신계숙 교수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전국 각지를 누비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여성 라이더 모임이 결성되고 운영 중이다.

SNS에서 ‘바이크 전도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꽃비 배우(이하 김)와 2015년부터 ‘두유바이크’라는 코너를 연재중인 유주희 서울경제 기자(이하 유)는 여성 라이더 문화를 앞장서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지난달과 지난해에 책 ‘아무튼, 바이’와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 타고’를 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두 라이더는 “바이크는 곧 힘이자 자유”라고 입을 모았다.

김꽃비(왼쪽) 배우는 SNS에서 ‘바이크 전도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고 유주희 기자는 2015년부터 ‘두유바이크’라는 코너를 연재중이다. 한진탁 인턴기자

김꽃비(왼쪽) 배우는 SNS에서 ‘바이크 전도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고 유주희 기자는 2015년부터 ‘두유바이크’라는 코너를 연재중이다. 한진탁 인턴기자


김 배우는 29세에, 유 기자는 서른 넘어 바이크에 입문했다. 김 배우는 친구 바이크 뒷자리에 얻어 타고 여행을 하다가 바이크 매력에 눈을 떴고, 유 기자는 시승기 기사를 쓰기 위해 바이크 위에 올랐다가 그대로 내리지 못했다. “사륜차보다 더 풍경에 녹아들 수 있고”(유), “적은 비용으로도 어디든 갈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김)에 끌렸다.

그러나 바이크는 매력만큼이나 헤쳐나가야 할 난관도 많은 상대였다. 한국에서 바이크는 여전히 ‘폭주족이나 불량 청소년들이 타는 것’, ‘배달용’이라는 각종 편견이 점철된 탈 것이다. 거기에다 ‘여자가 바이크를 타는’ 경우는 설명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뒤따른다.

“일단 안 무섭냐고들 자주 물어봐요. 남성들에게는 안 하는 질문이죠. 그리고 ‘젊은 아가씨가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그거 칭찬 아니거든요. 그 말의 전제는 여자는 원래 그런 거 못 타는 존재라는 거잖아요. 그건 오히려 여성 일반에 대한 모욕이에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륜차 운전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바라봐요. 사륜차만이 도로의 주인이고 이륜차는 거기 껴든 불청객이라는 거죠.”(김)

김 배우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만의 바이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김 배우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만의 바이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바이크 타면 많이 다치고 죽는다는 걱정도 그래요. 운전이 미숙한 일부 라이더들의 위험한 주행이 이유인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대개 사고는 사륜차 운전자들의 위험한 주행이나 부주의에서 비롯하거든요.”(유)

바깥의 시선만큼이나 내부의 왜곡된 문화도 장벽 중 하나였다. 남성 회원이 대부분인 바이크 커뮤니티에서 여성 회원들은 잠재적 연애 대상으로 취급받거나 성적 대상화되기 일쑤였다. 무조건 고배기량과 빠른 속도를 최고로 꼽는 남성 라이더 문화도 이해되지 않았다. 여성 라이더들을 더 많이 키우고, 규합하자고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2015년에 유 기자님의 ‘두유바이크’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여성 기자가 쓰는 바이크 기사라니. 그때만 해도 여성 라이더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했거든요. 온라인을 기반으로 여성 라이더들을 더 그러모으고 싶었고, 그래서 ‘치맛바람 라이더스’라는 여성 라이더 모임도 만들었죠.”(김)

바이크에 관한 글을 연재중인 유 기자는 "내 글이 어떤 편견을 강화하진 않을까, 여성 라이더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바이크에 관한 글을 연재중인 유 기자는 "내 글이 어떤 편견을 강화하진 않을까, 여성 라이더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한때 자전거는 여성들에게 금지된 탈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에게 자전거 운전이 허용된 것은 2018년의 일이다. 여성 사륜차 운전자에게는 ‘김여사’라는 멸칭이 따라붙었다. 탈 것의 자유는 여성 해방과 떼놓을 수 없다. 그걸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제주도 해녀 라이더다. 물질하러 가기 위해서는 남편이나 동료의 경운기를 얻어 타야만 했던 해녀들에게 1995년 이후 바이크가 급속히 보급됐다. 결과적으로 해녀들의 사회 활동 증가와 최초의 여성 어촌계장 탄생으로 이어졌다.

“제가 제주도에서도 해녀가 많은 동쪽 지역에 사는데, 해안도로를 지나다 보면 바이크가 모여 있는 게 보여요. 근처에서 해녀 분들이 물질하고 계신거죠. 제주도에서는 ‘1해녀 1바이크’예요.(웃음) 제가 바이크를 타면서 느낀 것도 똑같아요. 기동성에서 비롯하는 가능성.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바이크, 자기만의 차가 필요해요. 게다가 바이크는 사륜차보다 싸고 환경에 덜 해롭기까지 해요. 그러니 여자분들, 조수석 말고 바이크에 타세요.”(김)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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