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용 가스 공급 부품 국산화한 아스플로?
일본 수입 규제 조치 이후 밸브와 필터 등도 국산화?
"일본 규제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업 강화"
정부의 투자지원도 소재 부품 국산화율 증가에 기여
지난달 30일 경기 화성시에 1만1,570㎡(3,500평) 부지로 자리한 반도체 소재·부품 중소기업 아스플로. 이곳에서 반도체 제조용 튜브 절삭 작업에 투입된 100여 명 직원들의 손놀림은 분주했다. 이곳에선 반도체 공정용 가스 이송에 필요한 지름 6㎜의 좁고 얇은 관이 4~6m 길이로 나왔다. 관 내부는 티끌 하나 없이 거울처럼 깨끗하게 만들면서도, 부식성이 강한 가스가 쉴 새 없이 드나들기 때문에 부품 부식 방지에 필요한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공정이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독점해온 기술을 아스플로에서 국내 최초로 국산화했다. 공장을 안내한 박만호 아스플로 연구소장은 “기술 유출 위험으로 공개하기 어려운 시설이 대부분”이라며 “예전엔 기술력에서 일본에 뒤처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해 온 반도체는 그동안 소재와 부품의 높은 수입 의존도 탓에 일본의 수출 규제와 같은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반도체 제조 공정에는 30여 종의 가스가 사용된다. 이를 위해선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튜브와 차단하는 밸브, 가스의 이물질을 걸러주는 필터 등의 부품들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은 해당 부품들의 80~90%를 일본 기업들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입 규제 이후 필수 부품 수입은 어려워졌고 아스플로는 밸브와 필터 등의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다. 가격 경쟁력과 품질에서도 기대 이상이다. 박 소장은 "2년 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일본에 의존했던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한 데 이어 일본에 역수출하고 있다"며 "국산화 성공으로 올해 연간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소재ㆍ부품 분야의 일본 수입 비중 역대 최저... 대기업들 "국산이 먼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시행 2주년을 맞은 올해 소재·부품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일본 의존도는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 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올해 1~4월 한국의 소재·부품 누적수입액인 647억9,500만 달러 가운데 일본 제품은 96억9,600만 달러로 15.0%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6.1%)보다 1.1%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2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행된 2019년(15.9%)과 비교해서도 0.9%포인트 하락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019년 7월 1일 3대 반도체 핵심 소재(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으로 수출되는 전략물자가 제3국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무역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국산화보단 일본 기업에서 저렴하게 구입해 오는 게 낫다"는 국내 기업들의 안이한 생각에 ‘경종’을 울렸다.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 당시 일본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를 점유했던 상황이어서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품목인 반도체 산업은 송두리째 흔들릴 가능성도 컸다. 특히 일본 정부가 3대 핵심소재 이외에 다른 물자로 언제든 수출 규제를 단행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더해졌다. 2차전지 분리막 제조를 위한 부품 ‘클립’을 국산화한 중소기업 명성티엔에스의 이호철 이사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국내 대기업들의 태도 변화”라며 “예전에는 국산을 만들어도 일본 걸 쓰는 걸 고수했는데 지금은 먼저 국산을 찾는다”고 전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무형의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아스플로의 박 연구소장은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가 크게 줄어든 배경으로 “국내 대기업들과 중소기업 간 협업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부품을 자체 개발했을 때 가장 힘든 점은 이를 실제 장비에 적용해 실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존에는 연구실에서 이뤄진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주처인 대기업에 품질의 성능을 입증해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삼성전자 등에서 자신들의 장비를 중소기업에 빌려주고 품질 성능을 시험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귀띔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정부의 투자 지원이 활발해진 것도 우리나라의 소재·부품 독립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다. 아스플로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전략적 핵심소재 개발업체로 선정돼 5년 동안 65억 원을 지원받을 예정이다. 최근에는 산업부의 으뜸기업 사업에도 신청했는데 여기에 선정되면 연간 50억 원씩 5년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정부가 2019년부터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연구·개발(R&D) 사업에 나서면서 지금까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 2,151억 원, 특허 출원 271건 등의 성과를 거뒀다.
3대 핵심품목의 일본 수입 비중도 하락... "수입처 다변화 등 역할"
일본이 수출 규제를 단행했던 3대 핵심품목에 대한 우리나라의 일본 수입 비중도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우리나라의 포토레지스트 대(對)일본 수입 비중은 85.2%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8.6%보다 3.4%포인트 떨어졌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대일 수입 비중도 같은 기간 93.9%에서 93.6%로 낮아졌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올해 1~5월 수입 비중이 13.0%로 지난해 같은 기간(12.3%)보다 증가했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이뤄졌던 2019년(43.9%)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인 동진쎄미캠이 지난 3월 포토레지스트의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국내 기술개발이 이뤄진 덕분”이라며 “3대 핵심품목의 수입처도 일본 이외에 유럽과 미국 등으로 다변화되면서 산업 파급 효과가 큰 100대 핵심품목에 대한 재고 수준을 기존 대비 2배 이상 확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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