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청서 본회의 TV 중계 보던 유족 일제히 환영
2001년 16대 국회 때부터 발의, '이념 대립'에 무산
유족회장 "평생 억울하게 살던 유가족들에게 희망"
피해자·유족 구체적 지원방안 명시 불발 '과제로...'
"수고했습니다! 해냈습니다!"
29일 오후 전남 여수시청 회의실에서 TV를 지켜보던 이들은 ‘땅 땅 땅’ 의사봉 소리에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자리에 있던 권오봉 여수시장과 서장수 여순사건 유족회장, 김병호 시민추진위원장 등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닦았다.
권 시장은 "불신과 증오를 뛰어넘어 화해와 용서의 정신으로 긴 세월을 견뎌 오신 유가족과 시민에게 경의를 표한다"면서 "기념공원 조성과 여순사건의 명확하고 완전한 해결을 위해 후속 조치를 신속하고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남 여수와 순천 등 전남도민의 숙원이던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하자 그동안 억누르고 살아왔던 무수한 순간들이 교차했던지 이들의 축하와 감사 인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서 유족회장은 "평생 억울한 삶을 살아온 유가족에게 촛불과 같은 희망이 생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특별법은 국가가 희생자에게 의료·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규정을 담고 있다. 여순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묘역과 위령탑, 여수·순천 10·19 사건 사료관, 위령공원도 조성한다. 또 여순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평화와 인권 교육도 지원을 할 수 있다. 허석 순천시장은 “특별법 제정까지 73년이 걸렸지만 오늘을 시작으로 여순사건으로 희생당하신 유족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되고 치유·위로받는 일들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성명서를 통해 "유족의 염원이 결실을 맺어 감격스럽고, 도민과 함께 환영한다"면서 "16대 국회부터 20대까지 네 차례에 걸쳐 특별법안이 제출됐지만 매번 문턱을 넘지 못해 유족들에게 아픔을 줬는데, 이제 역사적 실마리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여순사건은 해방 후 혼란과 이념 갈등의 시기에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 중이던 일부 군인이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수많은 민간인이 군·경의 진압 작전이나 일부 좌익 세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됐다.
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를 두고, 전남지사 소속으로 '실무위원회'를 설치토록 했다. 위원회는 최초 구성 후 2년간 진상규명 조사권, 조사 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서 제출 요구권 및 출석 요구권을 갖는다. 3회 이상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중요 참고인에 대해선 동행명령장 발부도 가능하다.
특별법은 2001년 16대 국회 이후 4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이념 대립 등으로 처리가 무산됐다. 21대 국회 들어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 등 152명이 발의했고, 이번에 여야 합의로 법안이 통과했다. 국가 권력 기구인 군대에서 촉발된 여순사건을 국가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특별법 제정은 큰 의미가 있다.
국가 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와 유족 등에 대한 배·보상 등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명시되지 않아 과제로 남게 됐다. 소 의원은 "73년의 피맺힌 한과 20년 동안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무산된 좌절을 오늘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며 "긴 세월 견디어 오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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