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성 크지만 혜택 불분명 등 이유
미국 내에서 디지털화폐 신중론이 커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주요 인사들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에 잇따라 부정적 입장을 내비치면서다. 이미 상당량의 달러가 실물이 아닌 가상으로 거래되는 데다 디지털화폐의 위험성은 높지만 혜택이 불분명하다는 게 이유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랜들 퀄스 연준 부의장은 이날 유타은행연합 연례총회 축사에서 “미국에서 디지털화폐를 만들기 위해선 높은 기준을 통과해야 하며, 이로 인한 잠재적 이익이 위험을 상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움에 이끌리기에 앞서 신중한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달러가 이미 고도로 디지털화됐다”고 덧붙였다. 디지털화폐 발행으로 금융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에는 “저비용 은행 계좌를 발전시키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은 총재 역시 이날 애틀랜타 로터리클럽 연설에서 “우리는 이미 디지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을 ‘달러’라고 부른다”며 퀄스 부의장과 유사한 주장을 했다. 그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앱인 벤모(venmo) 등을 예로 들어 “거래가 이미 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연준의 주요 인사들이 입을 모아 디지털화폐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다.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만 발행할 수 있고, 액면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상자산)와는 다르다. 중앙은행의 독점적 발권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암호화폐의 핵심 기술인 ‘분산원장 기술’이 적용된다는 점만 같다. 중국을 비롯한 각국이 암호화폐엔 강력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면서도 디지털화폐에는 속도를 내는 이유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올 초 조사 결과를 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86%가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60%는 기술 실험에 들어갔고 14%는 시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역시 디지털화폐 연구ㆍ개발에 나선 상태다. 다만 도입을 서두르진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연준은 올여름쯤 관련 연구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우리는 혁신을 포용하고, 미국의 가계와 기업들에 광범위한 혜택을 제공할 안전하고 효율적인 결제 시스템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보고서는 섬세하고 신중한 과정이 될 디지털화폐의 첫 시작을 보여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준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속도가 한층 늦춰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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