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영국行 도모하다 공항에서 체포
'입장신문'은 모든 칼럼 내려… 언론계 위축
"충성서약 요구"… 野신민주동맹, 자진 해산

홍콩 반중 매체 빈과일보의 폐간 전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시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지어 선 24일 한 여성이 폐간호 1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홍콩의 대표적 반중(反中) 신문인 빈과일보가 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24일 폐간했는데도, 국가 안보 명분의 기자 체포가 이어지고 있다. 다른 매체까지 칼럼의 게시 여부 재검토에 나서는 등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1주년을 앞두고 언론계가 극도로 위축되는 분위기다.
28일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팅포스트(SCMP)는 빈과일보 논설위원인 펑와이쿵(57)이 전날 밤 10시쯤 공항에서 체포됐는데 영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은 펑 위원이 ‘외국 세력과의 결탁’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규정하고 있다. 처벌은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가능하다.
펑 위원이 붙잡히며 17일 경찰의 빈과일보 압수수색 이후 열흘간 이 신문과 관련해 체포된 이는 7명으로 늘었다. 그중 편집국장 등 2명은 외세 결탁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빈과일보에 2019년부터 실린 30여 편의 글이 외세와 결탁한 혐의를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언론의 자유가 홍콩의 핵심 가치인 만큼 지식인들의 글쓰기조차 용인되지 않는다면 홍콩은 국제 도시로서의 명성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경찰의 언론인 체포를 규탄했다.
빈과일보 사태는 홍콩 언론에 반면교사다. 당장 민주 진영 온라인 매체 ‘입장신문(立場新聞)’이 전날 밤 성명을 통해 홍콩에 ‘문자의 옥(文字獄)’이 왔기 때문에 후원자·저자·편집자 보호 등을 위해 잠시 칼럼을 내리는 한편, 자산 압류 대비 차원에서 후원금 모집과 신규 구독 신청 접수도 중단한다고 고지했다. 신문은 집필자들에게 글 게재 관련 위험에 대해 논의한 뒤 계속 게재 의사 여부에 따라 내린 글을 다시 올릴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문자의 옥은 과거 중국에서 황제·체제 비판을 이유로 필자를 숙청한 일로, 지식인 탄압을 의미한다.
홍콩 우산혁명 당시인 2014년 12월 창간한 입장신문은 2019년 반정부 시위 때 경찰의 시위대 탄압 장면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SCMP는 “빈과일보 폐간 이후 당국 단속에 대해 선제적 조치를 한 매체는 입장신문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홍콩 침례대의 브루스 루이 강사는 “자신들이 빈과일보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장신문 경영진이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언론뿐 아니다. 30일 홍콩보안법 시행 1년이 가까워질수록 정부 비판 민주화 세력의 씨가 마르는 형국이다. 야권 와해가 단적 증거다. 홍콩 야당 ‘신민주동맹’은 전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당 해산을 발표했다.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일부 전 당원이 수감됐고 당국은 구의회 의원을 상대로 충성 서약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다. 2010년 창당한 신민주동맹은 2019년 11월 구의회 선거에서 19석을 차지했지만 전날 현재 8명만 당에 남은 상태였다.
체포ㆍ기소 등에 따른 무더기 탈당 탓에 20일부로 소속 구의원이 32명에서 5명으로 줄어든 홍콩 제2야당 공민당도 해체 논의를 진행 중인 상황이다. 2019년 구의회 선거 압승으로 452석 가운데 392석을 휩쓸었던 홍콩 범민주 진영은 공직자 충성 서약의 대상이 구의원으로까지 확대되면서 150~170명의 자격이 박탈될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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