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논의 중인 ‘차별금지법’에 대해 교육부가 ‘학력을 이유로 한 차별’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냈다. 국정과제로 ‘학력·학벌주의 철폐’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 국정 철학과 모순된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차별금지법의 금지 대상 범위에 ‘학력’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교육부가 사실상의 삭제 의미인 ‘신중 검토’ 의견을 냈다. "학력은 합리적 차별 요소"라서 "과도한 규제"라는 게 이유다. 교육부는 “성, 연령, 국적 등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나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사상, 인종, 성별 정체성, 학력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에서 학력은 교육 수준뿐 아니라 학벌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채용과 임금, 승진 등 고용 전반에 불합리하게 작용하는 학력·학벌주의를 해소하자는 취지다. 14일 국민 동의 10만 명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됐다.
교육부의 검토 의견은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대학입시 블라인드 면접 도입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등을 제시하는 등 ‘학력·학벌 차별 관행 철폐’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 의원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자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모든 검토 의견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법안의 취지에 동의한다”면서 “다시 한번 입장을 확인하고 정리하겠다”고 답변했다.
교육부는 뒤늦게 문제가 되자 수정 의견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비슷한 법안에 낸 검토 의견을 참조했다"면서 "수정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력·학벌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법안 제정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학력·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이달 16일에는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이 ‘학력 차별 금지’를 명시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김부겸 총리 역시 20대 국회의원 시절 ‘학력·학벌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에는 유은혜 부총리도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김 총리는 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교육부가 어떤 맥락에서 검토 의견을 냈는지 모르겠지만, 산업화 시대의 시각에서 안 벗어났구나 하는 생각"이라며 "다만 이 법이 가진 취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해서 즉답을 못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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