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친절한 의사와 실력 있는 의사 중에서 누구에게 진료받을 것이냐’란 질문을 받으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 요즘 실시되는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호텔ㆍ백화점 등 서비스 업종과 비교해 대학병원이 상위에 오르는 것을 보면 병원의 친절과 만족도가 예전보다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환자 만족’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고, ‘환자가 우선(Patient comes first)’이란 슬로건까지 주목받으면서 의사도 병원과 환자 관계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2012년 미국내과학회지에는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의료 비용, 치료 성과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만족의 비용’이란 논문이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환자 만족도가 가장 높을 때가 낮을 때보다 사망률은 26%, 의료 비용은 8.8% 높았다. 만족도가 높으면 사망률이나 의료 비용이 낮을 것이란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다.
환자 만족도는 △얼마나 말을 잘 들어주는지 △쉬운 말로 설명해주는지 △환자 말을 존중해주는지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지 등으로 평가됐다.
‘환자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이는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뜻 외에 요구에 부응한다는 의미도 있다.
환자의 요구에 과도하게 응하다 보면 과잉 진료나 의료 자원 낭비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한 병원이 ‘설명 간호사’를 여러 명 두어 환자에게 설명을 잘 해주면 친절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 간호사가 줄어 진료의 품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진료 간호사를 더 뽑으면 되지 않으냐는 말은 인건비 부담 증가 때문에 논외로 할 수밖에 없다. 친절이나 환자 만족은 ‘비용 증가’를 수반한다는 사실은 자주 망각된다. 친절이나 고객 만족에서 병원은 호텔, 백화점과는 다른 점이 많다는 데서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
의료를 ‘예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같은 의사가 같은 환자를 진료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치료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의사들은 가족에 대한 치료를 피한다. 치료는 대개 냉정하고 객관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데, 예기치 않은 요소가 관여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요소에는 때때로 친절도 포함될 수 있다.
몇 년 전 필자가 서울대병원 교수로 근무할 때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대학병원에 무엇을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연구’라는 응답이 1위였고, ‘친절’은 4위에 그쳤다. 이 답변에는 의사들이 열심히 연구해 불치ㆍ난치병을 극복해 달라는 환자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겼다.
사실 친절과 실력을 반대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의사가 실력이 있다고 해서 다 불친절하지도 않으며, 친절하다고 해서 다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와 병원이 환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분명하다. 하지만 친절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친절을 넘어 의사와 환자가 이룩해야 할 다음 목표는 쌍방향 소통이다. 원활한 쌍방향 소통은 서로의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사망률도 낮출 수 있다. 마치 축구에서 ‘세트 피스(set piece)’로 골을 넣는 것처럼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팀워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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