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고령 구술 시인 백성례 할머니가 25일 전북 완주군청을 방문, 박성일 완주군수에게 선물한 '100세 할머니의 기도'라는 제목의 자작시 액자를 옆에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백 살을 넘겨 팔자에도 없는 시인이 됐다고 했다. 올해 나이 101세인 백성례 할머니. 그는 거의 평생을 고향인 전북 완주군 동상면 입석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국내 8대 오지(奧地) 중 한 곳이다. 그의 삶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영감 산자락에 묻은 지 수년 지나 / 백 살에 초승달 허리 이마 주름 뒤덮는데 / 왜 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제발 후딱 데려가소, 영감...'(영감 땡감 중에서)
그가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한풀이하듯 토해낸 말은 곧 시(詩)가 됐다. 국내 최고령 '구술(口述) 시인'의 탄생이다. 신산을 겪어온 그가 입으로 풀어낸 언어와 사연을 박병윤(52) 동상면장이 채록해 시집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에 담은 것이다. 백 할머니로선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 시무룩하게 앉아 시간을 죽이는 게 일이었던 그가 그예 자리를 털고 일어서 콧바람을 쐬기 시작했다. 집앞 텃밭을 직접 일구고 동네도 한 바퀴씩 돌아다닌다. 며느리 원영수(58)씨는 "시집이 나오기 전에는 어머니께서 주로 방에만 계셨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시다"며 "가슴에 담아 두셨던 100년의 한을 시로 풀어내신 덕분인지 안색이 좋아지셨고 활동도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백 할머니가 25일 완주군청사를 방문한 것도 '시인(詩人) 효과' 덕분이다. 오지에서 산 탓에 군청 한번 방문하는 게 소원이었다는 그는 큰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날 며느리와 함께 박성일 완주군수를 만난 그는 시인답게 '100세 할머니의 기도'라는 제목의 자작시 액자를 선물했다.
'맨날 맨날 기도혀요 / 나라가 잘 되라고 / 기도허고 / 대통령이 잘 허라고 / 기도허고...' 액자 속 시구(詩句)를 읊조리던 박 군수는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면 역사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며 "한 세기의 삶을 살아오신 백 할머니께서 방문해 주신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꼼꼼히 챙겨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백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수몰지역 삶의 아픈 이야기를 책으로 맹글어서(만들어서)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던 한을 다 털어낼 수 있었다"며 "속을 다 훑어내니 후련허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군청을 나와 집으로 발길을 돌리던 백세 시인의 주름진 얼굴엔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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