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으로 승부, 달라진 작품 캐스팅 기준
나이와 성별 무관…시대 흐름 타고 다양성 확보
올해 77세의 연로 배우가 30년 만에 드라마 주연을 꿰찼다. 또 감초 연기로 사랑받던 중년의 배우가 데뷔 23년 만에 원톱 상업 영화에 이름 올리는가 하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영화 드라마 쌍끌이 흥행을 노리는 이도 있다.
박인환 조우진 김서형 등 오랜 시간 조연으로 활동했던 이들이 드디어 앤드크래딧 이름 맨 위에 올라섰다. 긴 시간 입증한 연기력이 있기에 대중의 반응은 뜨겁다. 과거 흥행이 보증된 톱배우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주연' 자리가 이제는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배우에게 돌아가는 중이다.
4월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는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덕출과 꿈 앞에서 방황하는 발레리노 채록의 성장을 그린 드라마다. 박인환은 극중 인생 마지막 도전에 나선 덕출을 맡아 시니어의 도전할 용기부터 청춘 향한 위로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메시지를 전했다. 먼발치에서 조심스럽게 발레를 따라 하는 박인환의 현실감 넘치는 열연이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한 번도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다. 나도 잘 알아요. 내가 늙고 힘없는 노인이라는 거 그래도 하고 싶다"면서 발레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덕출의 대사는 몰입감을 고조시키며 뭉클한 감정을 자아냈다.
조우진은 데뷔 23년 만에 영화 '발신제한'에서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그는 1999년 데뷔 이후 16년 만에 영화 '내부자들'에서 악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이름을 알렸고 드디어 원톱 주연까지 차지하게 됐다. 긴 무명 시절 끝에 쟁취한 결과물에 대한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발신제한'은 누적관객수 9만 6,668명을 기록하며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작품은 은행센터장이 아이들을 등교시키던 출근길 아침, '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라는 의문의 발신번호표시제한 전화를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또 2005년 개봉한 '여고괴담4-목소리'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김서형은 17일 개봉한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의 주연으로 발탁, 관객들을 만났다. 드라마 'SKY캐슬' '아무도 모른다' '마인', 2017년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인 영화 '악녀' 등으로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선보였던 김서형의 주연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는 학교 안 폐쇄된 장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공포를 담은 작품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여고괴담' 시리즈에 해외 선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인'을 통해 6월 2주차 드라마 화제성 출연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들이 무명으로 지내온 힘든 순간이 있기에 주연 발탁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조우진은 한 방송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전 드라마 단역을 우연히 맡게 됐다. 촬영 가기 전날 여기저기 전화해서 'TV에 나오게 됐다'라고 말했는데 촬영장에 갔더니 다른 분이 제 역할을 하고 계셨다"면서 배역을 뺏겼던 순간을 기억했다. 김서형은 "공채 탤런트로 데뷔 후에도 오랜 시간 무명으로 활동하며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며 한 PD에게 재떨이로 맞았던 사연을 고백한 적이 있다.
이처럼 흥행 배우 중심으로 흘러갔던 작품들이 보다 다채로운 주인공을 만나게 됐다. 젊고 스타성 있는 연기자 위주보다 연기력에 집중하겠다는 방송계의 새로운 변화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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