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인 30대 직장인 신복주씨는 몇 년 전부터 '진짜 가죽' 가방을 더는 사지 않는다. 가방, 지갑 등 가죽 제품이 필요할 때면 폴리우레탄(PU)으로 만든 '인조 가죽' 가방 중에서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한다. 모피를 만들기 위해 동물들이 잔인하게 희생되는 영상을 보고난 뒤부터다. 요즘에는 선인장 가죽 같은 식물성 가죽 제품이 많아져 선택권이 넓어졌다. 그는 "비거니즘은 채식만이 아니라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 모피나 동물성 가죽을 쓰지 않는 것과도 모두 연결돼 있다"며 "겨울에도 오리털이 들어간 패딩이나 동물성 소재로 만들어진 코트는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패션 시장에서 '진짜' 대신 '가짜'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과거 패션 업계의 친환경 아이템이 모피 반대 운동에 기반한 '페이크 퍼(fake fur)'를 생산하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식물성 가죽, 실크프리 소재 등으로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제품 하나를 사더라도 윤리적 소비를 하겠다는 MZ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다.
버섯·선인장·파인애플 가죽의 등장
현재 패션 업계는 파인애플, 선인장, 버섯, 사과껍질, 포도껍질 등을 원료로 동물성 가죽의 질감과 같은 식물성 가죽을 개발했다. 소, 양, 악어, 타조 등 동물의 희생 없이도, 버려지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료로 만드는, 피 묻지 않은 가죽이다.
식물성 가죽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버섯. 옥수수 줄기를 깔고 그 위에 버섯 균사체를 배양하면 이들이 서로 얽히면서 강도가 단단해지는데, 이를 쌓아 압축해 만든다.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파인애플 가죽, 선인장을 가루로 만들어 가공하는 선인장 가죽으로 제작한 제품들도 속속 진열대에 오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대형 브랜드까지 보편화되는 추세다. 비건 패션의 수요가 채식주의자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의미다. 영국 명품 브랜드인 스텔라 매카트니는 앞서 버섯 가죽으로 만든 뷔스티에를, 독일 남성복 브랜드인 휴고 보스와 나이키는 파인애플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선보였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가 올 하반기 출시할 예정인 '빅토리아 백'도 버섯 가죽으로 만들어진다. 에르메스는 앞서 가방을 만드는데 필요한 악어 가죽을 얻기 위해 호주에 대규모 악어 농장을 만들 계획임을 밝혀 동물권 단체로부터 비판받은 바 있다.
진짜를 못 사서가 아니라, 진짜가 싫어서
MBC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지미유(유재석)가 즐겨 입었던 셔츠도 국내 비건 패션 브랜드인 '비건타이거'에서 만든 옷이다. 비건타이거는 울, 알파카는 물론 실크도 쓰지 않는다. 실크도 생산 과정이 잔혹하기는 매한가지다. 누에 사육 농가는 누에가 고치를 다 지으면 그대로 끓는 물에 넣어 실을 뽑아 낸다.
비건타이거의 양윤아 대표는 "예전에는 진짜를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짜 모피, 가짜 가죽을 썼다면, 이제는 진짜를 입기 싫은 사람들이 이런 제품을 찾고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라며 "지금 나오는 비동물성 제품은 가짜나 모조품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비건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도 비동물성 소재로만 가방, 지갑, 티셔츠 등을 제작한다. 카드 지갑은 선인장 가죽으로 유명한 멕시코 기업인 '데세르토(Desserto)'에서 수입한 가죽으로 제작하고, 면 티셔츠는 유기농 면으로만 만든다. 신하나 낫아워스 대표는 "코튼도 비건 소재이긴 하지만 재배 과정에서 물, 농약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문제가 있다"며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서, 패션 업계에서 다양한 친환경 소재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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