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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유혹, 그리고 윤석열 X파일

입력
2021.06.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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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중구 남산 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중구 남산 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아무도 모를 거라 여겼던, 꽁꽁 감추려 했던 치부가 드러날 경우, 당신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시원하게 인정하고 넘어갈 사안 또는 상황이 아니라면, 방어는 해야겠는데 사실관계가 그리 틀리지 않다면, 그야말로 난감하다. 선택지는 대체로 두 가지다.

일단은 그 내용을 떠들고 다닌 ‘괘씸한 놈’을 어떻게든 찾아내 혼쭐을 내고 싶어질 것이다. 유출자 색출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다면? 좀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비겁하게 남의 뒷조사나 하느냐, 불법을 쓰진 않았냐”라며 역공을 취할 수 있겠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어차피 ‘출처’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선 매한가지다. 목표는 프레임 전환이다. 폭로 내용의 진위를 따져보는 일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런 사태에 대처하는 권력자의 습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퇴임한 지 5개월이 지났건만, 미국 사회는 최근 또다시 ‘트럼프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바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인·언론인 사찰’ 논란 얘기다. 트럼프 취임 1년 후인 2018년 2월, 미 법무부가 정치적 냄새가 풀풀 나는 통신정보 제출 소환장을 애플에 보낸 사실이 이제서야 공개된 것이다. 당시 법무부는 73개 전화번호와 36개 이메일 계정 등 통신정보 제공을 요청했다고 한다.

물론 범죄수사를 위해 당국이 기업 측에 통신자료를 요구하는 건 통상적 절차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매우 특이한 요청”이라며 “기밀정보 유출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행한 전방위적 조사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대상자들의 면면 때문이다. 법무부의 타깃은 민주당 소속인 애덤 시프·에릭 스윌웰 의원 및 보좌관과 가족, 그리고 NYT·워싱턴포스트·CNN 등의 소속 기자들이었다. 모두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러시아 스캔들’을 파헤친 인물들이다. “트럼프의 법무부가 러시아 스캔들 유출 배후를 캐려고 법적 권한을 남용했다”는 비판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미국 현지에서 이 사안은 정치적 목적의 뒷조사, 곧 사찰로 규정되는 분위기다. 시프 의원은 ‘법 집행의 무기화’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위험한 공격”이라고 했다. 제리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도 “법무부가 트럼프의 정적을 사찰하는 데 사법권을 사용했다”고 일갈하면서 의회 차원의 조사를 개시했다. 어쩌면 향후 수사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트럼프가 ‘사찰의 유혹’에 너무나 쉽게 넘어간 결과다.

이른바 ‘윤석열 X파일’ 논란이 뜨겁다. 현재로선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시점이 문제일 뿐 해당 문건은 결국 공개될 것이다.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이상,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선 어차피 ‘검증’의 무대에 서야 한다. 아마도 X파일은 그가 정면돌파를 해야 할 첫 관문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윤 전 총장 측이 가장 먼저 내놓은 반응이 좀 찜찜하다. “명백한 정치공작이자 불법사찰이다.” 비록 ‘국가기관이 개입했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X파일 내용이 아니라 생산 경위로 논의 초점을 옮기려는 셈법이 읽혀서다. 이 사태가 불법사찰 논란으로 비화할지, 아니면 야권 유력주자 본격 검증의 계기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안타까운 건 우리가 또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점이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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