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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너드(Nerd)란, 남성이 쌓은 진입장벽일 뿐

입력
2021.06.26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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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초기 프로그래머는 여성이었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머릿속에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는 남자인가, 아니면 여자인가? 사회성이 좋은가, 아니면 썩 좋지 않은가? 세련되었는가, 아니면 촌스러운가? 그가 남자라면 그는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가?

시트콤 '빅뱅이론'에서 물리학에 빠져 괴짜스럽다는 뜻의 '너드' 대명사로 불렸던 쉘든(오른쪽)과 학문보다는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여성으로 묘사됐던 페니. 빅뱅이론 팬 커뮤니티 캡처

시트콤 '빅뱅이론'에서 물리학에 빠져 괴짜스럽다는 뜻의 '너드' 대명사로 불렸던 쉘든(오른쪽)과 학문보다는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여성으로 묘사됐던 페니. 빅뱅이론 팬 커뮤니티 캡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미국 CBS의 시트콤 드라마 '빅뱅 이론'의 쉘든처럼 곧잘 '너드(nerd)' 혹은 '긱(geek)'의 이미지를 갖는다(물론 빅뱅 이론의 쉘든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이론 물리학자지만). 이때 너드나 긱은 보통 남자다.

빅뱅 이론이 진지한 로맨스물이 아니라 시트콤인 것처럼 이들의 이미지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여성 앞에서 허둥대고, 자신을 꾸미는 데 관심이 없는, 그렇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는 천재인 이미지로 종종 웃음거리로 소비된다. 극 중 여성 캐릭터인 페니와 대조된다. 페니는 금발의 배우 지망생이며 빅뱅 이론의 너드들에게 진지한 동료보다는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된다.

딱히 근거를 찾을 길 없는 너드 이미지는 일견 부정적인 것 같지만 직업의 전문성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나단 엔스멩거(Nathan Ensmenger) 인디애나대 정보학 교수는 본인의 연구를 통해 "너드 혹은 긱의 이미지가 실제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기보다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며, 이런 이미지가 컴퓨터와 관련한 직업 세계가 만들어지는 역사에서 남성에게 중요한 자원이 됐다"고 말했다.

곧 사회적이지 않고, 섹시하지 않고, 논리정연하고, 좁고 깊은 전문성을 보이는 너드와 긱의 이미지가 실제 개발자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개발자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특정한 지향을 담지한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개발자나 공학자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타인과의 유대관계에는 관심이 없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만 푹 빠져 있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개발자나 공학자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타인과의 유대관계에는 관심이 없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만 푹 빠져 있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자였다

오늘날 흔히 개발자라고 부르는 직업의 비율은 남성이 월등히 높고 그들의 임금 역시 높다. 업계의 평균 임금과 취직률이 높다는 점 때문에 요즘 젊은 여성 사이에서 프로그래밍을 익혀 IT업계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마치 남성이 주도하던 영역에 여성이 발을 들이는 것 같지만, 실은 원래 여성의 영역이었던 것을 되찾는 일에 가깝다.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자였고, 이들은 컴퓨터과학 발달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해왔다.

1946년에 완성된 최초의 대형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은 현대 컴퓨터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에니악은 전쟁을 거치며 발전했는데 이때 에니악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들은 과학자, 엔지니어, 군인과 같은 남자들이었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전자식 컴퓨터 시스템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는 데 있었고, 이에 비해 실제로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일은 사소하게 여겨졌다.

남성이 구상한 컴퓨터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컴퓨터(computer)라는 명칭은 계산한다(compute)는 뜻에서 기인했다. 기계 도움 없이 수학 계산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됐다. 곧 전자식 컴퓨터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여성은 '여성 컴퓨터'로 여겨졌다. 남성들은 여성 컴퓨터가 전자 장치처럼 일하도록 관리·감독했다.

공장노동 취급받던 코딩 업무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미국 천문학자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이 하버드 천문대장으로 재직할 때 컴퓨터 계산수로 고용한 여성들. 저임금 노동자인 이들 덕에 계산 속도가 빨라졌고 천문학 연구에 기여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위키피디아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미국 천문학자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이 하버드 천문대장으로 재직할 때 컴퓨터 계산수로 고용한 여성들. 저임금 노동자인 이들 덕에 계산 속도가 빨라졌고 천문학 연구에 기여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위키피디아

이러한 성별 분업은 1947년 미국의 법률학자 허만 골드스타인과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에니악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매뉴얼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들은 컴퓨터 개발 과정에서 이뤄지는 노동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먼저 문제를 분석하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지적인' 역할을 하는 설계자. 그리고 설계자의 아이디어와 문제의 해결법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일을 하는 코더(coder·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다른 말). 후자의 일이 여성의 일이었다. 코더는 기계적이고 단순 반복적인 일로 여겨져 저임금을 받았고 비가시화되었다.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일을 여성에게 맡기는 것은 비단 컴퓨터과학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산업화 시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은 곧잘 여성이 담당했다. 1960~70년대 한국에서도 '시다'와 '미싱'으로 불리며 장시간 저임금의 공장노동을 감당한 여성 노동자들은 한국 산업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지만 '공순이'로 불리며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과 멸시를 당하곤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역사에서도 여성 코더는 없어서 안 될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여성 코더와 남성 설계자의 구분이 조금씩 무너지고 남성 코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는 코더의 몸값이 오르면서부터다.

남성 프로그래머의 등장

컴퓨터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전문화되면서 더 많은 프로그래머가 필요해지고 이들의 대우도 좋아졌다. 자연스레 이 직업에 뛰어드는 남성이 많아졌다.

기존 여성 프로그래머가 남성 프로그래머에게 점차 자리를 빼앗기게 된 원인과 그에 관한 해석은 다양하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우선 프로그래밍 관련 직종에 종사하기 위한 조건으로 학력을 도입하면서 독학 프로그래머들이 취업하기 어려워졌다. 이는 여성들, 그중에서도 출산과 육아로 휴학했을지 모르는 여성에게 불리한 조건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진짜 프로그래머'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남성성과 연결되며 이들에게 더 높은 전문성을 부여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무렵 업계에서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머 일화가 자주 나왔다. 천재적인 프로그래머가 평범한 동료보다 몇 배나 더 생산성이 높다는 (허술한) 연구 결과까지 등장했다. 채용 담당자들은 어중이떠중이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진짜 프로그래머'를 찾고자 애썼다.

'진짜 프로그래머'의 특징이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너드 혹은 긱 이미지에 가깝다. 사람보다 기계를 더 좋아하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컴퓨터에 몰입하고, 다른 일에는 일체 무관심하며 어눌하고, 안티소셜(반사회적)하며, 성적으로 매력 없는 존재. 이러한 특성을 가진 프로그래머는 남성이었고, 이들만이 '진짜 프로그래머'로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다.

'프로그래머' 스펙에 학력이 추가되고 특정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점차 여성들은 프로그래머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프로그래머' 스펙에 학력이 추가되고 특정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점차 여성들은 프로그래머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자들만의 리그로 변해간 프로그래밍

'개발자'라고 검색했을 떄 나오는 이미지 중 하나. 게티이미지뱅크

'개발자'라고 검색했을 떄 나오는 이미지 중 하나.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다시 볼 것은 너드와 긱이 과연 안티소셜한 존재였냐는 것이다. 당시 남성 프로그래머 꿈나무가 주로 활동하던 곳 중 하나는 대학 내 컴퓨터 센터였다. 산업 현장과는 달리 대학에서는 컴퓨터 사용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해 관리하지 않았고, 이 덕분에 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프로그래밍을 즐기기 위해 컴퓨터 센터라는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1960~70년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현저히 낮았다. 여성 프로그래머가 활동하던 산업 현장과는 달리 학교 내 컴퓨터센터는 오직 남성만의 영역이었다. 여성이 참여할 수 없었던 이 공간에서 남학생들은 자원의 제한 없이, 누구의 제약도 없이 컴퓨터라는 최첨단 기술을 실험해보는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 이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 대화하고 경쟁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를 키워 나갔으며, 나아가 이들끼리의 문화를 다져갔다.

1970~80년대를 지나며 여성을 배제하는 컴퓨터과학의 규범과 문화, 기풍, 관행 등이 점차 단단히 만들어졌다. 대학 내 컴퓨터 센터는 이러한 문화의 산실이었다. 컴퓨터 센터라는 공간은 남성 프로그래머의 독점적 공간이었고, 이 공간 안에서 너드와 긱은 안티소셜이기는커녕 대단히 뿌리 깊게 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만 호모소셜(homosocial, 동성끼리만 교류하는)이었을 뿐.

다시 여성의 영역으로 넘어온 의미는

이 이야기에서 내게 흥미로운 점은, 과거 남성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에게 붙은 부정적인 이미지(너드와 긱)를 탐나는 분야의 전문성을 획득하는 자원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지우고 싶을 만한 단점을 정체성으로 가져와 자기 분야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데 사용했다.

그렇다면 2021년 컴퓨터과학을 새로 배우는 여성들은 이들이 세워놓은 세계에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까? IT기업과 정부가 '가성비'를 위해 (남성보다 돈을 적게 줘도 되므로) 여성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이 이 분야에 들어가서도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나아가 여성들은 자신에게 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시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미나 작가

하미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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