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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 비명은 하나님도 눈감아 주셨다

입력
2021.06.23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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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산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우니, 나는 이제 원통함을 참지 않고 다 털어놓고, 내 영혼의 괴로움을 다 말하겠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겠다.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로 나 같은 자와 다투시는지 알려 주십시오.”(욥 10:1-2) 속이 시원하다. 하나님 믿고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장밋빛 인생길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믿고 잘 살다가 된통 당한 성경의 욥은 그렇게 울부짖었다.

참고로 저런 말은 교회 목사님께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목사님은 대개 '답정남' 혹은 '답정녀'시다. 그분들이 절대 당신의 고통에 무심해서가 아니다. 교리도 목사님도 우여곡절 인생길에 대하여는 대개 몇 가지 전형적인 답만 제시한다. 하지만 그 답이 사람을 감화하면, 죽으려던 사람이 살 용기를 얻기도 하고 신앙에 귀의하여 도리어 자신을 불살라 헌신의 삶을 살기도 한다. 이 또한 신앙의 신비이고 은혜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몸은 학대하고 멸시하시면서도, 악인이 세운 계획은 잘만 되게 하시니 그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라도 됩니까? 주님의 눈이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의 눈이기도 합니까?”(3-4) 욥의 사이다 발언은 이어진다. 뭔가 알아야 하겠다는 듯 꼬치꼬치 따지고는 있지만, 사실 인간도 그 속내는 답이 정해져 있다. 다시 인생의 달콤한 복락을 덜거덩 받아버리면 질문은 쏙 들어간다. 인간의 속성을 잘 안다는 듯, 욥기는 욥이 다시 복을 흠뻑 받아버리는 것으로 그 긴 글을 마친다. 하나님의 신비한 답을 경험하고는 신앙도 회복하였다.

그랬던 욥이지만 그전에는 ‘하나님 원망하기 대회’에 나가 금메달이라도 따려는 선수처럼 목에 핏줄을 세웠다.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고, 나를 돌보셔서, 내 숨결까지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주님께서는 늘 나를 해치실 생각을 몰래 품고 계셨습니다.”(12-13) 전체 42장이나 되는 긴 책인데, 욥기는 앞뒤 몇 장만 빼고 거의 40장이 이런 내용이다. 하나님을 변호하려는 친구들 앞에 하나님께 서운하고 실망했다는 말을 폭풍처럼 쏟아 놓은 성경책이 바로 욥의 이야기다. “차라리 모태에서 죽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나 않았더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생기지도 않은 사람처럼, 모태에서 곧바로 무덤으로 내려갔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내가 살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를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 내게 남은 이 기간만이라도, 내가 잠시라도 쉴 수 있게 해주십시오.”(18-20) 욥은 창조주께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법을 알았다. 그 앞에서 죽음을 바란다는 독설을 날린 것이다.

마음이 강퍅해지면 선을 넘기도 한다. 누구는 욥기가 심오한 철학의 출발이라고도 하지만 어찌 보면 마구 질러댔던 비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 비명이 성경 일부로서 존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욥기는 고통에 대한 해결이나 답보다도 그 비명을 인정한 책처럼 보인다.

아플 때는 비명을 지르는 것이 당연하다. 아픈 사람이 비명도 못 지르게 입을 틀어막는 것은 가장 가혹한 고문이다. 하나님도 눈감아주고 허락했다. 점잖고 고매해도 우리는 모두 어느 곳에선가는 배출을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지루한 욥의 하소연이 장장 40장 가까이 적혀 있는 이유이다.

새벽부터 밤 열한 시까지 학교에 갇혀있는 십대들의 똘끼는 인정해야 한다. 분하고 억울해서 푯말을 들고 소리 지르는 이들에게도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분주하고 치열한 한국 사회에 노래방이 그렇게나 많은 것은 다행이다. 참지만 말고 살짝 일탈도 해야 건강할 것이다.

요새 아내가 밤마다 무명가수전에서 선비메탈을 선보인 정홍일의 노래를 듣고 또 듣는다. 오장육부를 다 긁어내듯 쏟아내는 그의 울부짖음에 아내의 영성은 더 건강해지리라 믿는다. 새삼 그에게 고맙다. 그가 아니었으면 누군가가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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