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974년 막강한 현직 총리의 정치자금 문제를 파헤쳐 퇴진하게 만든 탐사보도의 거목,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지난 4월 30일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으로 별세했다고 23일 일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80세. 고인이 무너뜨린 인물은 일본 금권정치의 상징이자, 일본인에게 가장 추앙받는 대표적인 정객,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1918∼1993) 전 총리였다.
1940년 나카사키현에서 태어난 다치바나는 도쿄대 졸업 후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 입사했다. 2년 반 만에 회사를 떠났지만 취재와 집필을 계속, 1974년 11월 유명한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을 발표한다. 다나카 전 총리는 '열도개조론'을 앞세워 일본 전역에 건설 붐을 일으키고 고도성장기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러나 미국 항공기 제작사인 록히드사가 다나카 등에게 뇌물을 주고 항공기 판매의 특혜를 얻으려 한 '록히드 사건'으로 일본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런 사실을 밝혀낸 단초가 다치바나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독립 언론인 신분으로 뜻이 맞는 동료 및 출판사와 함께 일일이 등기부등본을 떼는 등 확실한 증거를 차례차례 수집하고 수많은 인물을 만나 기사를 썼고, 결국 12월 다나카 총리 퇴진를 이끌어냈다.
다치바나와 교류했던 유명 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田原?一朗)는 23일 NHK에 "당시 다나카 총리가 금권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은 다른 매체도 다 알고 있었지만 어디도 쓰지 않았다"며 "분게이슌주에 다치바나의 기사가 나온 후에도 다른 매체는 쓰지 않다가, 일본의 외신기자협회 회견을 계기로 처음으로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치바나는) 금권정치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몸을 던져 기사를 썼다"며 "일본에서 목숨을 걸고 쓰는 저널리스트는 좀처럼 없는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다치바나는 이후에도 날카로운 관점과 철저한 취재를 기초로 한 르포 기사를 여러 편 발표했다. 정치뿐 아니라 최첨단 과학, 의료, 우주 등 다방면의 방대한 정보를 다루는 논픽션 저작도 다수 발표해 ‘지(知)의 거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관심이 있는 분야는 최소 10권의 책은 읽어야 한다”던 그는 20만권에 이르는 장서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책을 보관하기 위해 별도로 '고양이 빌딩'이라 불리는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 '일본공산당 연구', '천황과 도쿄대-대일본제국의 생과사', '중핵파 vs 혁마르파', '록히드재판 방청기', '다케미쓰 도루(武滿徹)-음악창조의 여행',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 '뇌사 재론' 등이 있다.
유족의 발표에 따르면 다치바나는 오랫동안 통풍, 당뇨, 고혈압, 심장병, 방광암 등 다양한 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해 오다 1년 전 대학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치료를 목표로 하기보다 조금이라도 평온하고 고통이 덜한 상태로 유지하고 싶다"는 본인 희망에 따라 다른 병원으로 옮겨 마지막 날까지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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