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국민 연하남 수식어를 받았던 지현우가 또 다시 연하남으로 돌아왔다. 젊고 열정이 가득했던 20대를 마치고 이제 조금 더 차분하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지난 21일 지현우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기작인 KBS2 새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촬영을 앞두고 있다는 지현우는 오랜만에 만난 '빛나는 순간'에 대해 깊은 여운을 토로했다.
'빛나는 순간'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 지현우는 고두심과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남다른 호흡을 선보였다. 두 사람은 해녀 작업장에서 해녀들과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진옥이 좋아하는 숲을 걷고, 상사화를 보며 미소 짓는 등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현우가 처음 시나리오를 받자 마자 든 생각은 "잘 썼다"였다. 유려한 필력이 그려낸 해녀와 한 남자의 이야기를 두고 지현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자신이 느낀 감정과 여운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에 대해 지현우는 "보편화된 시각이 아닌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 봤을 때 노년의 여성도 한 여자로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반대의 경우인 남자(주인공이 나이가 많은) 작품은 많다. 여성과의 작품은 왜 없는지 생각이 됐다. 사람들이 '은교'는 작품으로 인식한다. 나이 많은 여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를 나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면서 대본을 읽으니 이해가 됐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고두심이라는 그늘 안에서"
극 중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현우는 이야기에 더욱 몰입해야 했다. 제주도 촬영 내내 쉬는 동안 오름을 오르면서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캐릭터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혼자 다녔다는 고충이 전해졌다. 아울러 소준문 감독과 함께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조용필의 '걷고 싶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등을 참고했다는 지현우다. 또 영화에 어울리는 비주얼을 표현하기 체중 감량까지 소화했다. 대본 속 '젊은 육체'라는 표현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남성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당시를 두고 지현우는 촬영 현장에서 고두심이 공수해 온 돔베고기를 먹지 못해 아쉬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간 드라마 활동에 집중했던 지현우는 영화로 또 다른 도전을 기대했다. 여기에는 고두심이라는 비빌 수 있는 언덕이 크게 도움이 됐다. 그는 "영화를 많이 안 해봤지만 연기자니까 이런 저런 색깔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고두심 같은 대선배와 연기하는 기회도 흔하지 않다. 연기를 했을 때 안정감이 있다. 고두심이 그 정도로 좋았다. 큰 그늘 안에서 연기를 하니 위안이 됐다. 고두심은 정말 멋있다. 꼰대의 면모가 전혀 없다. 자기 이야기 보다 주변 이야기를 수용한다"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저도 이제 어느덧 촬영 현장에서 선배가 됐다. 사실 선배보다 후배를 대하는 게 더 어렵다. 예지원 최강희랑 하다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 성격 자체가 잘하자고 이끄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고두심에게 기대면서 연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극 중 동굴 속 키스신에 대한 언급도 흘러나왔다. 이에 지현우는 자신이 먼저 감독에게 여러 제안을 내놓았다면서 "이마부터 키스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아픔이 있는 인생에 입을 맞춘다는 게 진욱 입장에서 좋을 것 같다. 감독님도 고두심도 긴장하고 저도 긴장을 했다. 사실 고두심보다 제가 키스신을 더 많이 해봤다. 한 방에 오케이가 나왔지만 다른 버전으로도 찍자고 했다"고 말했다.
"'아는 형님', 기대해주세요"
최근 고두심과 함께 '아는 형님'에 나갔다는 지현우는 "다들 보시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이번 예능도 선생님에게 기대서 갔다. 현장에서도 다 놀랐다. 대상을 7번 받은 분은 역시 포스가 다르다. 김희철이 고두심을 말릴 정도였다"면서 "저는 예능에 가면 신인이 되는 것 같다. 카메라 20대 앞에서 조사 받는 기분이다. 집에 오면 멍하다. 압박감이 있다. 내 스스로 편집점을 찾고 재미를 추구한다. '청춘불패'를 했을 때도 '난 안되겠다' 싶었다. 에피소드가 별로 없는 인생이다. '나 혼자 산다' PD에게 저는 재미가 없는 사람이고 혼잣말도 안 하는데 괜찮겠냐고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혼자만의 시간을 유독 즐기는 지현우. 이는 긴 연기 생활 내 갖게 된 공허함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그는 "고독을 외면하는 것은 아예 옳지 않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이 딱 꺼지고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카메라 20대 앞에서 활기찬 분위기, 촬영장에서 울고 불고 할 때 감정을 마치고 돌아섰을 때 '나는 어딨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공허함은 자연으로 채운다. 힘들 때마다 자연을 보고 산을 오른다. 가끔 나무를 안기도 하고 명상도 한다. 점점 친구들이 다 결혼하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힘든 걸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안 좋은 에너지가 전파된다. 걸러서 이야기하려 한다. 조용히 혼자 여행하는 것이 편하다"고 토로했다.
"데뷔 당시에는 일을 재밌게 했다. 고민 두려움 걱정이 지금보다 적었다. 그때는 굉장히 즐겼다. 지금은 즐기는 것 보다 두려움과 불안감, 압박감이 커졌다. 지금 내 연차의 배우들이 갖는 고민이다. 나이도 어느 정도 됐고 서른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연기적으로 더 잘 표현해야 한다는 고민이 많아졌다. 부담감이 커지더라. 정답이 없어서 어렵다. 모든 사람이 다 같지도 않다."
지현우에게 '척하지 말자'는 지금껏 지켜온 소신이다. 연기적인 테크닉에만 집중하지 않다는 의미다.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에 대해 지현우는 "팬들이 저를 응원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하지 않지 않도록 하겠다. 지현우라는 배우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별로라는 말을 듣게끔 하고 싶지 않았다. 20대에는 캐릭터를 잘 털었는데 30대가 되니 어렵다. 아빠들이 갱년기가 와서 드라마를 보면서 운다. 저도 그런 감정이 생긴다. 별 것 아닌데 울컥한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지현우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많은 고민을 만나게 됐다. 정답 없는 물음표를 좇아 뚜벅 뚜벅 걸어가는 모습이다. 고심 중 만난 '빛나는 순간'과 고두심은 지현우에게 쉬어갈 수 있는 언덕이자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됐다. 좋은 에너지를 받고 또 존경할 수 있는 선배를 만난 지현우는 계속 걸어갈 힘을 얻었다. 이에 지현우가 또 다른 행보를 어떻게 선보일지 기대감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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