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술 마시는 여성을 쿨하고 일도 잘하는 사람으로 그려요. 주류 업체는 더 많은 여자들이 술을 먹도록 유도하고요."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소주 광고에서 여자 아이돌이 '짠'을 권한다. 다음 날 숙취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깨끗하고 건강한 미소를 머금고. 드라마 속 워커홀릭 여주인공은 소주를 들이켜며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잘 차린 안주와 '혼술'은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하는, '인스타 갬성'이다. 편의점 진열대에는 '초깔끔한 맛' '통레몬 그대로 담은'이라며 '순한 술'임을 강조하는 병과 캔이 가득하다.
2030 여성에게 술 권하는 사회다. 자연히 적정량 이상을 마시는 여성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음주 관련 규제, 중독 치료, 예방 정책은 남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여성에 대한 음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스트레스→술, 위험한 여성의 음주습관
21일 유튜브 생중계로 열린 '젠더를 고려한 알코올 정책' 포럼(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신현영 더민주 의원실 공동 주최)의 화두는 ①증가하는 여성 음주량 ②2030 여성의 폭음 경향 ③여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현재의 알코올 정책, 세 가지였다.
정부 통계만 봐도 술 마시는 여성은 늘었다. 2005년 37.0%였던 여성 월간음주율(최근 1년 동안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한 비율)이 2018년 51.2%로 14.2%포인트 증가했다. 남성은 같은 기간 72.6%에서 70.5%로 줄었다. 당연히 남성이 더 마시지만, 여성 음주 또한 꾸준히 늘어났다.
여성은 어릴수록 많이 마신다. 주 2회 이상 술을 마시는 고위험군은 남성의 경우 40대(27.7%)가 가장 많았지만, 여성은 20대(14.9%)가 제일 높았다. 또 중장년층 여성은 사회적 동기, 그러니까 회식이나 모임 등을 통해 술을 마시지만, 20, 30대 여성은 개인적 이유로, 내 기분이 더 좋아지려고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임신·육아를 감안하면 '젊었을 때 많이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많다.
손애리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술 마시는 여성 454명(1955~1998년생)의 음주 습관을 봤더니 20, 30대 중 46.8%가 월 2~4회 마시고 일주일에 2, 3회 마시는 비율도 20.4%에 이르렀다. 40대 이상 여성들은 모임의 분위기나 사람과의 유대감 때문에 마신다면, 2030 여성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74.7%·중복 선택), 기분이 울적할 때(64.0%) 술을 마셨다. 손 교수는 "부정적 감정을 없애려고 술을 먹으면 고위험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술 부추기고 치료는 사각지대
전통적 젠더 개념과 거리가 멀어 안 그래도 음주에 관대한 젊은 세대를 미디어가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능력 있고 멋진 여성이 술을 즐기는 모습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꾸며낸다는 것이다. 규제가 엄격한 담배와 달리 음주 콘텐츠는 특별한 제한이 없는 것도 문제다.
상황이 이러니 중독까지 가는 여성도 늘고 있지만 아직 여성만을 위한 치료법은 딱히 없다. 남성 환자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해야 하는 치료 환경에도 부담을 느낀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김대진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는 "생물학적 특성상 여성은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알코올 사용 장애에 이르는 속도가 더 빠르고 가능성도 크지만, 여성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이 있는 병원이 극소수"라며 "육아 지원, 부부 동반 치료 등 현실적 여건에 맞는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절주 캠페인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홍은주 교수는 "음주는 건강 이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예산, 교육, 미디어, 광고, 마케팅까지 포괄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들을 하나로 잇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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