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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앓은 의사, 그가 한국인 최초 '에볼라 의사'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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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앓은 의사, 그가 한국인 최초 '에볼라 의사' 된 이유

입력
2021.06.22 16: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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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출간, 의사 정상훈?
아르메니아·시에라리온 등지 구호 활동 담은 에세이
"죽음 생각하다 생사 갈림 현장에서 삶의 의미 찾아"

해외 의료 활동 경험을 담은 에세이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쓴 정상훈씨는 현재 국내 코로나19 최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해외 의료 활동 경험을 담은 에세이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쓴 정상훈씨는 현재 국내 코로나19 최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1년 반 동안 전 세계적으로 380만 명 넘게 숨졌다. 많은 이들이 천문학적 사망자 수를 접하면서 죽음에 무뎌지고 있고 빈부 격차가 죽음의 격차로 이어지는 현실에도 무감각해지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구호 활동을 다녀와 '한국인 최초 에볼라 의사'라는 수식어를 얻은 프리랜서 의사 정상훈(50)씨가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뒤늦게 책을 쓰게 된 건 이 때문이다. 정씨는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아르메니아 레바논 시에라리온에서 한 의료 활동 경험을 녹인 에세이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25일 출간한다.

17일 화상 통화로 만난 정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수많은 희생에서 빈곤·차별·혐오 등 죽음이 드러내는 우리 삶의 특성을 목격했다"면서 "내가 과거에 겪은 생사 갈림의 현장 경험이 코로나19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언제 어디에나 있는 죽음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전공의로 재직했지만 '진료실에 앉아 들어오는 환자만 보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이 때문에 30대 중반이던 2003년 의료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의료인 단체 '행동하는의사회'를 조직했고 병원을 그만뒀다.

하지만 정씨는 비주류 의료인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떠올렸을 정도의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리고 이 우울증이 그를 해외 구호 현장으로 이끌었다. 그는 2년에 걸친 치료로 우울증에서 회복한 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되뇌었고, '국경없는의사회' 해외 구호 활동가로 죽음이 만연한 현장으로 떠나게 됐다.

그는 서아시아 빈곤국 아르메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레바논, 치사율이 90%까지 치솟았던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진 시에라리온에서 죽음의 불평등과 마주했다. 생계 문제로 결핵 치료를 미룬 채 해외로 떠나는 노동자, 가부장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치료를 포기한 아기 엄마, 국가에 헌신했지만 고통을 줄이는 치료조차 지원받지 못한 전역 군인 등을 보살피면서 불평등의 민낯을 봤다.

특히 빈곤·차별·대립으로 갈라진 세계를 치유할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그의 좌절감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최근 한 쪽방촌에 세워진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했다. 그는 "코로나19의 거대한 죽음 뒤에도 빈곤과 차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책은 그가 느낀 이 같은 무력감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는 "최소한 세상의 아픔에 깨어 있고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방향의 삶을 살겠다는 내 생각에 공감해 주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라며 쓴 책"이라고 부연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 개인만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면 그것이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는 길이 아닐까요."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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