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준·김정식 PD 화상 인터뷰
지난 18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청춘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지구망)'는 약속이나 한듯 익숙한 재미를 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맥이 끊긴 청춘 시트콤의 집대성판이라 할 만하다. '남자 셋 여자 셋', '논스톱' 시리즈의 권익준 PD가 기획하고, '하이킥' 시리즈의 김정식 PD가 연출해 화제가 됐다. '뉴 논스톱(2000~2002)'에는 교내 커피자판기 관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학비를 버는 경림(박경림)이 있다면 2021년 '지구망'에는 "죽는 것보다 사장한테 알바비 떼이는 게 더 무섭다"는 세완(박세완)이 있을 뿐이다. 차이라면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고 없고다.
21일 화상으로 만난 권 PD와 김 PD는 "오랜만의 청춘 시트콤 작업이 즐거웠다"며 "회차를 더할수록 캐릭터가 보이고, 케미스트리가 살면서 재미있어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장형의 긴 제목은 언뜻 세기말 분위기를 풍기지만 작품 전체 분위기는 유쾌하다. '지구망'은 서울의 한 대학 국제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다. 권 PD의 경험에서 비롯된 설정이다. 해외 근무 후 2017년 귀국한 그는 "당시 거리에서 정말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변화였다. 반면 한국 청년들은 '헬조선'을 얘기하며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게 아이러니처럼 느껴졌다"며 "서울은 그런 이상한 현상을 모아볼 수 있는 도시 같았다"고 말했다.
'지구망'에는 인종도, 국적도, 성격도 제각각인 외국인 학생 7명과 국제 기숙사를 관리하는 한국인 조교 세완이 등장한다. 제작진은 한국말이 되는 20대 초반의 외국인을 찾기 위해 공을 들였다. 국내 최초 흑인 혼혈 모델로 이름을 알린 한현민과 한국계 미국인 제이미 역의 신현승, 한국계 호주인 쌤 역의 보이그룹 '갓세븐'의 영재를 제외하고,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민니, 요아킴, 카슨, 테리스 브라운은 각각 태국, 스웨덴, 미국,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이다. 극중 이들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스럽게 그려진다. 굳이 외국인 캐릭터가 등장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권 PD는 "기획 과정에서 많이 고민했지만 인종이나 민족, 국가와 관련한 스테레오 타입을 말하는 건 시대에 안 맞다고 결론내렸다"며 "피부색이나 나이, 성별 다 상관없이 동등한 인간으로 개인의 개성만 갖고 있을 뿐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속에 무의식적으로 깔려있는 차별과 편견은 정말 조심하자, 다양성은 전세계적 이슈이고, '지구망'도 누가 볼지 모르니까 이걸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와 함께한 이번 작업은 기획부터 최종 공개까지 2년이 걸렸다. 주5회 수백 회차로 방영되는 TV 시트콤과 달리 '지구망'은 12부작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190여개 국가에 공개되는 만큼 타깃 시청층도 따로 없다. 권 PD는 "사람들이 뭘 좋아할지 따라가지 않고 우리 역량을 믿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대를 넘어 누가, 언제봐도 보편적인 웃음을 주는 게 목표다. '지구망'은 "라면 같은 콘텐츠"가 됐으면 한다고도 했다. "누구도 라면을 보양식이라고 하지 않지만 라면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 맛에 중독되잖아요. 청춘 시트콤은 퇴근하면서 버스 안에서 잠깐 30분, 학원 가기 전 컵라면 먹을 때 잠깐 보면서 떼우는 시간 같은 거죠. 대단한 얘기를 하기보단 팍팍한 일상 속에 잠깐 쉬는 시간처럼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