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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폭로 후 살해된 여군…미군 내 성범죄 위험도는

입력
2021.06.20 15:00
수정
2021.06.20 15: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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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육군, 기옌 사건 후 개선 약속 불구
전투 부대·지휘관 감독 부실할 경우
성폭력 위험에 시달리는 여군 많아

미군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살해된 바네사 기옌 일병을 추모하는 벽화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전시돼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미군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살해된 바네사 기옌 일병을 추모하는 벽화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전시돼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지난해 4월 미국 텍사스주(州) 포트 후드 군기지에서 여군 일병 바네사 기옌(20)이 실종됐다. 두 달 뒤 그는 부대에서 40㎞ 떨어진 강변에서 훼손된 시신 상태로 발견됐다. 용의자는 기옌의 상급자였던 애런 데이비드 로빈슨(20). 그는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려 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옌은 실종 직전 “부대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다른 여군들도 당했다. 그들은 사건을 보고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어머니에게 호소했다. 기옌의 죽음 후 대대적인 조사에 나선 미 육군은 지난해 12월 장교와 사병 14명을 처벌했다. 미 육군장관은 “(포트 후드에는) 성희롱과 성폭행을 허용하는 강압적 분위기가 있다”고 발표하고 개선책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과연 상황은 달라졌을까. 18일(현지시간) 공개된 미 랜드연구소의 육군 소속 여군 성폭력 위험도 조사 결과 전투준비태세를 중시하는 부대나 지휘관의 감독이 부실한 곳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여군들이 성범죄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포트 후드에서 복무한 여군 5,883명 중 약 8.4%가 성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기지 내 여군이 당한 폭행 위험은 육군 전체 평균에 비해 3분의 1 정도 더 높았다. 또 의료나 인사 특기 여군은 성폭력 위험도가 낮았지만 포병과 공병은 더 위험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전 포병은 2015년 마지막으로 여성에게 개방된 육군 전투 특기 중 하나다. 보병, 기갑, 특수작전 여군도 성폭력 위험에 더 노출됐다.

바네사 기옌 일병이 복무 중 살해당한 미국 텍사스주 포트 후드 기지. AP 연합뉴스

바네사 기옌 일병이 복무 중 살해당한 미국 텍사스주 포트 후드 기지. AP 연합뉴스

또 수도인 워싱턴이나 국방부에 배치된 군인들은 위험도가 낮았지만, 텍사스나 콜로라도 캔자스 켄터키 등 일선 육군 기지의 여군들은 성폭력과 괴롭힘을 당할 위험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미 AP통신은 “국방부에 있는 여군들은 평균적으로 나이가 더 많고, 더 계급이 높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또한 나이가 많고 계급이 높은 남성 군인과 함께 일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최근 상원 국방위원회에 나와 군대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처벌을 지휘관이 아닌 독립적인 사법 기구에 맡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군대 내 모든 사건을 군 지휘부가 아닌 독립적인 군 변호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논란이 복잡해지고 있다. 군 사법제도의 대대적인 변화 필요성은 커졌지만 세계 최강 미군 역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개혁을 미루기는 매한가지다.

한국도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중사 사건으로 군대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반짝 관심을 보이다 어느덧 조용해졌다. 부단한 제도 개선과 여군을 동료·전우로 대하지 않는 군인문화 개선 없이는 군 내 성범죄를 척결할 수 없다는 게 기옌 사건의 교훈이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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