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온건 기조로 방향을 튼 것도 잠시, “소아병”, “버릇을 고쳐 놔야 한다” 등 격한 언사가 당청에서 쏟아지고 있다. 좌표는 ‘관계 개선’에 찍어 놓고, 실제 행동은 ‘감정적 대결’을 지향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17일 CBS 라디오에 나와 “외교라는 건 파트너가 있고 다른 나라에 대한 예우를 가져야 하는데 (일본의 태도는) 상식적이지 않다”고 직격했다. 앞서 11~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한일 정상이 약식회담을 열기로 사전 조율했으나, 결국 호응하지 않은 일본의 ‘결례’를 꼬집은 것이다.
문제의 발언은 다음에 나왔다. 이 수석은 “(G7 정상회의 전후의) 세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두고, 현실적으로 지정학적 이웃을 바꿀 수는 없으니 잘 지내보려 하는데 일본이 거기에 폄훼하는 태도를 보여 불쾌하다”고 했다. 관계 개선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 또 “옛날에 아베가 (정치적) 위기 때마다 한국을 공격하면서 반전시켰다. 스가가 똑같은 수법을 쓴다”며 청와대 고위 인사가 일본 전ㆍ현직 총리의 이름을 직함 없이 부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평가되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같은 날 언급은 더욱 위험해 보였다. MBC라디오에 출연해 한일정상회담 가능성을 설명한 윤 의원은 “(문 대통령이) 일본에 가는 것도 방법이다. 아무리 일본이 ‘소아병적’으로 일을 하더라도 통 크고 대범하게 손을 내미는 게 이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치밀하게 준비해 단호하게 (일본의) 버릇을 고쳐 놓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외교 관료가 아닌 정치인 신분임을 감안해도 소아병이나 버릇 등의 비하적 표현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외교가에선 갈수록 문 정부의 대일 외교 방향성을 가늠할 수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2019년 8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를 전격 결정하는 등 초강경 노선을 견지해 온 정부는 올 들어 “과거사는 과거사이고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1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며 ‘투트랙 외교’로 급선회했다. 중국에 대응해 한미일 3각 공조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북아 전략에 결을 맞추면서, 동시에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대화 재개 여건을 마련하려면 한일관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대립에서 화해로 방향을 틀었는데, 정작 일본이 맞장구를 치지 않는 데 따른 당혹감이 감정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짚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펼 필요는 없다”면서도 “맞불식만 고집하면 한일관계 개선으로 얻고자 하는 성과는 점점 달성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어렵더라도 물밑 협상을 통해 앙금의 바탕인 과거사 문제 해법을 먼저 도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G7 정상회의 등 문 대통령의 유럽순방(11~17일)을 결산하면서 “정부는 한일 정상 만남에 열린 자세로 임해 왔지만 이번(G7 회의)에 인사를 나눈 것 외에 회동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앞으로도 양국관계 개선과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열린 자세로 일본 측과 대화ㆍ협의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정상회담 개최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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