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아이 때려 숨지게 한 계부 징역 12년 확정
양형 이유엔 "훈육 리스트에 폭력 자리는 없어"
박주영 부장판사, '어떤 양형 이유' 에세이 출간도
A군(당시 5세)에게 새 아빠 B씨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2017년 11월 엄마의 재혼으로 외갓집에서 2년 정도 떨어져 지내다 어렵사리 돌아왔지만, '엄격한 훈육'을 내세운 B씨는 가혹하기만 했다. 밥 먹는 자세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버릇 없이 행동한다는 이유에서 꾸짖음의 강도는 점차 세졌다.
지난해 2월 그때도 처음엔 ‘훈육’이라고 했다. B씨는 "말대꾸하고 비웃는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며 급기야 A군의 머리를 세게 밀쳤다. A군은 대리석으로 된 거실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강하게 부딪혔고 결국 의식을 잃었다. 충격에 뇌가 붓고 출혈이 발생한 A군은 닷새 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B씨는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아동학대치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변명만 늘어놨다. "머리를 밀친 적이 없다"거나 "젤리를 먹다가 기도가 막혀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 같다"며 억울함만 주장했다. 하지만 A군의 부검감정서 등에 적시된 사인은 분명했다. '부딪히거나 맞는 등 상당한 외력이 가해졌다'는 게 A군이 사망한 이유였다.
"사랑의 매는 없다…폭력적인 훈육은 사랑이 아니다"
1심 재판부인 울산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박주영)는 B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7쪽에 달하는 장문의 '양형 이유'를 이례적으로 판결문에 담았다. B씨를 포함한 수많은 아동학대 부모를 향해 박 부장판사가 남긴 '당부'이자 '호소'였다.
박 부장판사는 '사랑의 매'를 핑계로 대는 아동학대 부모들을 향해 "훈육의 리스트에 폭력의 자리는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방식을 심어 주는 훈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사랑의 매란 없다"고 단언했다. 사랑이 폭력을 수반하면, 사랑은 잊히고 폭력만 각인되기 때문이고, 폭력이 수반된 훈육은 사랑도 아니라는 게 이유다.
박 부장판사는 예방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아동 관련 기관이나 의료 종사자들의 부주의나 무관심, 방임으로 학대를 예방하지 못하거나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이 상당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 관련 종사자와 주위 사람들의 세심한 관심, 신속하고 적극적 개입, 이를 통한 예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고할 때마다 부르는 죽은 아이들 이름…마지막이길"
박 부장판사는 그간 아동학대 재판을 맡으면서 느껴야 했던 안타까움도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는 "(다른 아동학대 사건에서) 아이들이 식탐이 많다고, 자주 운다고, 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부모에게 맞고 학대당하고 방치되다 사망했다"며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선고할 때마다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 이름이 아동학대로 스러져 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고 했다. 그는 "학대로 숨져 간 아이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그 소망이 그저 부질없는 기대였음을 통절하게 절감한다"면서 "우리의 무관심과 방임을 환기시키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스러져야 하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동료 판사들 사이에서도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사건에 '분명한 소신'을 가진 판사로 알려져 있다. 이들 사건처럼 사회구조적 이유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선 상세한 양형 이유 기재를 통해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는 게 박 부장판사 생각이다.
박 부장판사는 이 같은 생각을 담은 에세이 '어떤 양형 이유'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책을 통해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양부는 반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의 호소에도 B씨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도 범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으며 징역 12년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항소심은 1심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고, 대법원도 B씨 상고를 기각하며 징역 12년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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