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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지털 사회, 기술 아닌 시민의식으로 완성

입력
2021.06.17 13:5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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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늘 온라인에 연결돼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악성 댓글과 혐오 표현 등으로부터 자신의 '디지털 안전'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졌다. 창비 제공

늘 온라인에 연결돼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악성 댓글과 혐오 표현 등으로부터 자신의 '디지털 안전'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졌다. 창비 제공

최근 미디어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을 보면서 친한 선생님들과 새삼스레 세상 걱정을 했다. 미디어와 네트워크를 통해 혐오와 어리석음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과도하게 대표되는 상황이 너무 많아졌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게다가 국가기관이나 기업, 언론도 별다른 사회적 기준 없이 그 혐오와 어리석음에 동조하는 듯 보였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마음이 무거웠다. 새로운 미디어에 기반한 삶의 터전이 만들어졌는데 이에 대한 윤리나 사회적 가치 기준은 부족하다. 정글화 된 디지털 사회 논리가 오프라인으로 스며들어 가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 디지털 정책과 산업이 윤리·사회적 논의 없이 기술 발달과 경제적 효과에 대한 판타지로 질주한 결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서 어린이·청소년은 당연히 안전하지 않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신문·방송의 비판적 읽기 등을 강조하는 전통적 미디어 리터러시와 구별 지어, 디지털 기술 역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의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디지털 미디어가 삶의 영역으로 더 가까이 들어옴에 따라 디지털 리터러시의 문화적 측면과 디지털 시민성이 강조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결과다. 최근 발표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일반논평 제25호'도 이런 맥락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디지털 미디어 세계로의 확장으로, 디지털 사회에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강조한 국제적 협약이다.

그런 점에서 '안전하게 로그아웃(창비 발행)'은 현재 가장 시의성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위한 안내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였지만 초등학생 이상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안전을 지키고, 더 나아가 디지털 사회의 좋은 시민이 되고 싶다면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안전하게 로그아웃' 이란 안전한 상태에서의 로그아웃', 즉 디지털 세계의 안전이 삶의 안전으로 연결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안전하게 로그아웃·김수아 지음·창비 발행·176쪽·1만2,800원

안전하게 로그아웃·김수아 지음·창비 발행·176쪽·1만2,800원

책은 세심한 동시대 청소년 미디어 문화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담고 있다. 미디어 문화 연구자인 저자는 청소년이 참여하는 다양한 미디어 공간과 문화, 문제 상황 등을 살펴보고 전문가적 관점을 통해 안내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청소년이 스스로를 미디어 안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돕는다. 청소년 미디어 문화 관련 학술 연구 및 통계 등도 담았다. 예를 들어 집단 지성으로 구성된 인터넷 세계의 지식과 문화는 민주적이지만 내용의 부정확성과 정보 격차로 인한 편향성 문제가 있다. 혐오가 여과 없이 담기기도 한다. SNS 해시태그 운동 등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밖으로 드러내고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사회적 참여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손쉽게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2000년대생)가 스스로 성찰할 것을 권유하는 따뜻한 전문가의 목소리가 곳곳에 담겨 있다.

디지털 시민에 대한 저자의 정의는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안전을 보호하는 동시에 디지털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민주적 정치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안전한 디지털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욕설이나 나쁜 말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왜 혐오 표현이 나쁜지 그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의식을 갖지 않으면 누구든 온라인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어른에게 권장하고 싶다. 저자의 말대로 좋은 디지털 세계는 기술 발전으로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 각자의 노력과 좋은 공동체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인공지능(AI) 기반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 것은 사실상 서늘한 경고와 시민사회에 대한 독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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