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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밑 껌에 진 중국

입력
2021.06.1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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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대중국 수출 비중 큰 호주
중국 간섭 경제 보복 이겨 낸 교훈
경제는 생물, ‘신조선책략’ 거부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시내 한 호텔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양자회담에 앞서 팔꿈치를 맞대며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시내 한 호텔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양자회담에 앞서 팔꿈치를 맞대며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코로나19의 기원을 밝힐 국제조사가 필요하다.”

지난해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이 발언에 중국은 발끈했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도 같은 얘기를 했지만 유독 ‘약자에 강한 중국’은 호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호주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고 중국을 겨냥한 ‘외국 간섭 방지법’을 통과시킨 것도 못마땅한 참이었다. 중국 관영매체 간부는 중국판 카톡인 웨이보에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껌’이라며 ‘가끔 돌을 찾아 문질러줘야 한다’는 상식 밖의 글까지 올렸다. 곧바로 중국은 호주에 14개 반중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며 전방위 경제보복에 나섰다. 호주산 쇠고기의 수입을 제한하고 호주산 보리엔 8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호주산 랍스터는 물론이고 석탄의 하역도 막았다.

호주산 철광석 수입 금지는 수순으로 보였다. 호주 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34%(2019년)나 되고 이런 대중 수출액의 60%가 철광석이다. 호주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카드다. 그러나 중국은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중국 철강 산업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세계 최대 철광석 수출국이고, 중국은 호주산 철강석을 수입해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 될 수 있었다. 수입을 막으면 오히려 중국의 피해가 더 커진다. 더구나 철광석 가격도 전 세계적 경기 부양책과 인프라 건설에 급등하던 때였다. 결국 지난해 호주의 대중국 수출은 큰 타격이 없었다.

다른 조치도 부작용만 낳았다. 중국이 호주산 와인에 200%가 넘는 관세를 붙이자 엉뚱하게 미국산 와인 수입이 급증했다. 지난 3월에는 중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호주를 혼내려다 오히려 더 큰 적인 미국만 이롭게 한 꼴이다. 중국이 호주산 건초 수입을 막은 것도 중국 축산 농가의 부담으로 이어져 육류 가격 상승의 한 원인이 됐다. 호주산 석탄이 사라지자 발전소 가동이 차질을 빚으며 일부 지역에선 전력난도 겪었다.

단언하긴 이르지만 중국과 호주의 무역전쟁 결과는 사실상 호주로 기우는 모양새다. 지난달 중국의 호주산 제품 수입액은 136억 달러로 전월 대비 55%나 증가했다. 전체 무역에서 중국과의 비중이 우리보다 더 큰 호주는 이렇게 중국의 경제보복을 이겨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달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과학원, 중국공정원 원사와 중국과학기술협회 대표 등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달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과학원, 중국공정원 원사와 중국과학기술협회 대표 등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일각에선 우리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크다며 중국의 경제보복을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뿐 아니라 호주 등 많은 나라의 최대 교역국도 중국이다. 동등한 국가 간 자유무역은 서로에게 득이 된다. 그러나 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속국 취급하고 소국 운운하며 거대 시장이란 힘의 논리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중국과 호주의 전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많은 공장이 중국에 진출한 우리는 상황이 다른 면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보복은 중국 의도대로 가지 않았다. 이웃 나라와는 가능한 한 갈등을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이를 과대평가하거나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경제는 생물이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도전은 새로운 기회도 제공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결국 우리에게 약이 됐다.

최근 중국은 우리에게 남의 장단에 치우쳐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미국에 휩쓸리지 말란 얘기다. 최대한 표현을 절제한 외교적 수사가 이 정도니 과연 중국공산당 수뇌부가 한국을 어떻게 여기는지 가늠할 수 있다. 140여 년 전 청나라 외교관이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면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주장한 ‘조선책략’을 연상시킨다. 시진핑 주석이 한때 천명했던 외교 원칙인 친성혜용(親誠惠容)은 사라진 지 오래다. 호주는 중국의 간섭을 단호히 거부하고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지키는 길을 선택해 경제도 지킬 수 있었다. 선조들도 중국엔 당당히 맞섰다. 우리가 갈 길도 분명하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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