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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자에 펀치를...' 사이다 가사로 美팝계 뒤흔든 Z세대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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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자에 펀치를...' 사이다 가사로 美팝계 뒤흔든 Z세대 소녀들

입력
2021.06.16 17:06
수정
2021.06.16 17:1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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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로드리고. 유니버설뮤직 제공

올리비아 로드리고. 유니버설뮤직 제공

‘참 잘도 지내는구나. 몇 주 만에 새 여자도 만나고 /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말하던 거 기억 안 나니 / … / 하늘에 맹세코 나만 너를 가질 수 있다며 / 헛소리 집어치우고 엿이나 먹어 / … / 잘됐네. 나 없이도 아주 잘 지내다니 / 빌어먹을 소시오패스 같은 녀석.’

요즘 미국 Z세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곡으로 꼽히는 올리비아 로드리고(18)의 최신 히트곡 ‘굿 포 유(Good 4 U)’의 가사다. 남자친구와 이별 후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며칠째 울고 있는’ 10대 소녀의 절절하고 과격한 심정을 담았다. 뮤직비디오에선 아예 남자친구의 침실을 불태우는 복수까지 감행한다.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복고풍 펑크(Punk) 팝인데도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방탄소년단의 ‘버터’에 이어 3주 연속 2위를 지키고 있다.

올 초 데뷔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로 직행하는 신기록을 세운 ‘드라이버스 라이선스(Driver’s License)’에서도 로드리고는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양다리를 걸치다 새 연인에게로 떠난 남자친구에 대한 노래인데, 아역배우 출신인 로드리고가 몇 년 전 디즈니 플로스 드라마 ‘하이 스쿨 뮤지컬’ 촬영장에서 만나 사귀었던 배우 조슈아 바셋과 그의 새 연인 사브리나 카펜터에 관한 곡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두 곡 외에도 로드리고의 데뷔 앨범 '사워(Sour)'에는 전 남자친구를 ‘배신자(Traitor)’라고 저격하는 ‘트레이터’ 등 10대 소녀의 요동치는 심리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대부분의 가사를 직접 쓴 로드리고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소녀들이 드러내기에 적절치 않다고 여겨지는 분노나 질투, 악의 같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데스티니 로저스의 'Tomboy' 뮤직비디오.

데스티니 로저스의 'Tomboy' 뮤직비디오.

미국의 Z세대 가수들은 이처럼 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같은 세대와 소통한다. 젊은 팬들도 고리타분한 사랑 노래보다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가사에 공감한다. 이에 미 NBC 온라인판은 “로드리고 앨범이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일기를 엿보는 듯, 가까운 친구와 함께하는 듯한 느낌 덕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요즘 R&B 음악계에서 떠오르는 신인 데스티니 로저스(21)의 음악도 그렇다. 지난달 신곡 ‘웨스트 라이크(West Like)’를 발표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그를 스타덤에 올린 건 데뷔곡 ‘톰보이(Tomboy)’였다. 프로 스케이트보더 데뷔를 준비했을 만큼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는 ‘톰보이’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부순다. ‘나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이고, 남자들 세계에선 보스야 / 픽앤롤(농구의 공격법)도 하고 패스, 발레 동작도 할 수 있지 / … / 엄마는 말했어. 부자랑 결혼하라고 / 그래서 난 말했지. 내가 그 부자라고’

인디록계에선 10~16세 소녀 4명이 결성한 펑크 록 밴드 린다 린다스가 화제다. 세 명의 아시아계 미국인 소녀가 주축이 된 이 밴드는 지난달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서 연 기획성 공연이 유튜브에 공개된 뒤 유명 인사가 됐다. 이들이 연주한 곡 중 하나의 제목은 ‘인종차별자, 성차별자 소년(Racist, Sexist Boy)’. ‘록다운에 들어가기 얼마 전이었어 / 같은 반 아이가 내게 오더니 / 아빠가 중국인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다더군’이라고 설명하며 시작하는 이 곡은 자매, 사촌 사이인 세 멤버 중 막내인 드러머 밀라 드 라 가르자가 실제 겪었던 일을 토대로 쓰였다.

지난달 유튜브에 공개된 미국 4인조펑크 록 밴드 린다 린다스의 LA 공공도서관 공연. 유튜브 캡처

지난달 유튜브에 공개된 미국 4인조펑크 록 밴드 린다 린다스의 LA 공공도서관 공연. 유튜브 캡처

밴드는 ‘저열한 말을 입에 올리면서 / 싫어하는 것에 마음을 닫아 버리고 / 듣기 싫은 것에 귀를 막아버리는’ 인종차별자이자 성차별자인 소년에게 포효하듯 펀치 한 방을 날린다. 이 곡은 공개 이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플리 등 거물급 록 스타들의 극찬을 받았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탄 응우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노래”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Z세대가 주도하는 팝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미국이든 국내든 요즘엔 너무 다듬은 가사는 옛 음악 같은 인상을 주는 듯하다"면서 "또 한편으로는 직설적이다 못해 파격적인 가사의 힙합 음악이 대세가 되면서 팝 음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 수위가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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