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방송영상제작 외주업체를 운영해 온 50대 최모씨의 요즘 걱정은 태산이다. 다음 달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될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때문이다. 10명 남짓의 직원을 두고 꽤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해왔지만,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하고 비수기엔 푹 쉬게 되는 업종 특성상 사람을 늘릴 경우 비수기 회사 운영이 위축될 게 뻔해서다. 최씨는 “사실상 회사도 (큰 기업의) 을(乙)인 입장이다 보니, 원청의 요구에 따라 근무 패턴이 바뀔 수밖에 없다”며 “업무가 몰릴 때면 근로기준법을 어기거나, 그렇지 않으려면 해낼 수 있는 일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주52시간제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중소업계와 소상공인들의 속앓이도 깊어지고 있다. 업종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큰 회사들의 ‘발주’에 따라 업무집중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주52시간제 도입으로 돌아올 파장이 만만치 않아서다.
고용주들 "지금 당장 시행하면 무너진다"
당장, 고용주들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3년 전과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태반이다. 특히 뿌리·조선업체 등을 포함해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는 영세업체들에게 주52시간제 적용은 최악이다. 이런 현실은 이날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주52시간제 대책 마련 촉구 경제단체 공동입장 발표'를 주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전해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주물·열처리 업체들은 설비를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곳이 많고 대부분 2교대 인력을 운용하는데, 이를 3~4교대로 바꾸려면 인력을 추가 채용해야 하지만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어 “석회석 가공업계는 강원 등 광산 지역에 공장이 있어서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노인·여성 인력까지 활용한다”며 “타지에서 버스로 인력을 끌어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기중앙회가 최근 뿌리·조선업체 207곳을 대상으로 '주52시간제'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44%는 아직까지 준비가 덜 됐고, 27.5%는 7월 이후에도 시행은 어렵다고 답했다. 시행 준비가 어려운 이유로는 ‘구인난’이 42.9%로 가장 많았고, 주문량의 사전 예측이 어렵단 응답이 35.2%로 뒤를 이었다. 이날 행사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참석해 “특단의 보완책 없이 50인 미만 기업에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 큰 충격을 주게 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근로자들 "제도 확대 반기지만 심경은 복잡"
근로자들에게 주52시간제 확대 시행이 반갑지만, 업종에 따라선 “심경이 복잡하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기업과 기관의 문화·스포츠행사 대행운영업체 직원인 30대 엄모씨는 “법적으로 과로를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 반갑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갑(甲)’으로 알려진 기업이나 기관들의 요구를 무조건 충족시켜야 하는 게 현실이지만 주52시간 확대 시행으로 직원이 충원될 경우엔 수당 지출 등은 늘어난다. 그만큼 다른 직원들에게 돌아갈 소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단 얘기다. 엄씨는 “기본적으로 업무가 늘어나는 하절기엔 인력 충원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낀다”라면서도 “직원을 늘린 뒤 일감이 떨어지면 누군가 한 명은 퇴사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까 봐서 걱정이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이어 “고용주도 큰 틀에선 을의 입장인데, 경우에 따라선 근무시간을 두고 을끼리 싸우는 일도 벌어질 것 같단 생각도 들어 기업 규모에 따른 현실적인 대안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 "해결 방법 찾기 위한 노력이 우선"
전문가들은 제도 시행을 약 보름 앞두고서야 목소리를 내는 고용주들을 꼬집으면서도, 파견근로자 활용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3년이란 시간이 됐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건 의지 문제이기도 하다”며 “문제 해결의 시도도 없이 현재 인력 자체만으로 기업운영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파견근로자 채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지만, (5~49인 사업장의 경우) 하청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 최대 6개월 허용되는 파견근로자 채용 등으로 일시적인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며 “근로자 권익을 위한 제도인 만큼,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기업 규모가 작은 곳에선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단 생각”이라며 제도적인 현실화도 함께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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