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전담 김진호 대구 서부경찰서 경위
60여 청소년들이 믿고 따라
퇴직 후 야학 등 방황하는 청소년 돌볼 것
19살, 경찰에게 맞았다. 그것도 파출소 뒷마당에서였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얼굴을 가렸다. 이러다 맞아 죽겠다 싶어서 신고하겠다고 소리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년이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었다. 돈이 없어 소풍도 가지 못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은 집 앞까지 와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가난이 화근이었다.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지고 마음에 불만이 쌓였다. 닥치는 대로 시비를 걸고 싸움을 벌였다. 친구들과 가출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무서울 것도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주먹이 매서웠다. 싸워서 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대구에서 유명한 비행청소년이 됐다.
"맞느라 힘들었제? 자장면 묵자."
그를 흠씬 두들겨 팬 경찰은 자장면을 시켰다. 자장면을 한 젓가락 먹고 단무지를 집는데 나무젓가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 면을 씹을 때마다 입안이 욱신거렸다.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말끔하게 비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실컷 맞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경찰이 건네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경찰에게 맞은 비행청소년은 후일 경찰관이 됐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진호(학교전담경찰관·53)대구 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위는 그날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두들겨 맞은 것도 처음이지만, 또 그렇게 솔직하게, 가감 없이 충고해준 분도 처음이었어요. 마음이 열리더군요. 조금 특이한 교육법이긴 했지만, 저에게는 통했습니다. 19살 때 경찰관으로부터 호되게 맞고 진지한 충고를 듣지 않았다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갔을 겁니다."
경찰서에서 나온 뒤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 곧바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던 그가 2년만에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서른이 넘어서 갑자기 경찰이 되고 싶었다.
열병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끓어올라 하던 일을 접고 경찰관 시험에 매달렸다. 전국 체전에서 챔피언을 차지한 이후로 그렇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해본 적이 없었다. 36살에 경찰관이 됐다. 동기 중에 띠동갑도 있었다. 그럼에도 꿈을 이루었기 때문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의 화려한 전력이 양지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여성청소년계 업무를 맡으면서였다. 방황하는 청소년을 만나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주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찰답지 않은 눈매와 에두르지 않는 진심을 담은 직설화법에 순한 양이 됐다.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땐 특별한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한번은 막말을 하는 학생 앞에서 한 손으로 사과를 잡고 으스러트려버렸다.
"으깨진 사과를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 아이의 어깨를 감싸고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며 마음을 달랬죠. 며칠 뒤에 만났더니 저를 ‘아버지’라고 부르더군요."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지원했다. 학교 밖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가르쳤다. 6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 아이들은 모두 김 경위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2018년 잠시 다른 부서에 배치됐다가 1년 반만에 다시 원래의 자리로 왔다. 돌아와 보니 새로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성인이 된 아이들이 취업자리를 알선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김 경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미용, 뷰티, 자동차정비 등 기술계통 8개 업체와 네트워크망을 갖췄다. 이들 업체에서는 아이들이 단기속성으로 기술을 배우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번듯한 월급을 받자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어떤 아이는 매달 월급통장을 김 경위에게 보여주었고, 한 아이는 목돈을 모아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19살 때 한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진심이 담긴 훈육이 어른들로부터 받은 최초의 관심이자 애정이었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켰다"면서 "시대와 풍습이 변했다지만 진심으로 다가오는 어른에게 마음을 열고 반응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말했다.
"학교 밖 아이들이 잘 성장해서 사회에 안착하는 사례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저 같은 성공사례를 더 보고 싶습니다."
그는 퇴직하면 야간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변화의 첫 단추는 공부라는 확신 때문이다. 인터뷰를 끝낼 즈음 사뭇 진중한 표정으로 "기사에 꼭 실어달라"면서 당부 하나를 전했다.
"아이들의 취업프로젝트에 더 많은 기업들이 동참해주었으면 합니다. 아이들은 흙이 묻은 보석입니다. 흙만 닦아내면 얼마 안 가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존재들입니다. 어떤 분야라도 좋습니다. 저와 함께 보석을 닦는 일에 동참할 사장님들을 찾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일에 동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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