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있겠지만 당연히 나타나는 절차"
"중요한 건 평화롭고 개방된 토론의 장"
"성소수자 받아들이니 군 역량 개선돼"
차별금지법 제정 각국 대사들 한자리에
"뉴질랜드에도 동성결혼을 콕 집어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뉴질랜드 국회는 자유로운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 중요한 건 모두에게 열린 논의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3월 부임한 터너 대사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유명세를 탔다. 2019년 정부가 주한 외국 공관원의 동성 배우자를 법적 배우자로 인정함에 따라, 그는 정부 주최 공식 외교행사에 배우자와 함께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터너 대사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인종·혐오 차별 대응 주한대사 등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 1993년 뉴질랜드에서 인권법(차별금지법)이 제정됐을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뉴질랜드의 포괄적 인권법은 13개 소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차별을 일절 금지하는 내용"이라며 "뉴질랜드에선 '기본권은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큰 논란 없이 통과됐지만, 성소수자 이슈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반대 입장이 커졌고 사회 분열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 제정까지 진통이 계속돼, 관련 법안이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종교계 일각에선 동성결혼을 포용할 수 없다며 법안 발의에 동참하려는 국회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는 등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터너 대사는 이를 두고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절차"라며 "중요한 건 국회가 이들에게 평화롭고 개방된 토론의 장을 조성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밝혔다.
터너 대사는 한국군의 강제전역 조치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트랜스젠더 군인 고(故) 변희수 하사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뉴질랜드에선 2010년 최초로 트랜스젠더 여성 공군 하사가 커밍아웃 한 적이 있다"며 "당시 뉴질랜드군은 성소수자와 관련된 어떤 정책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소수자를 포괄하는 다양성 추진 지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군은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14년 국제 안보 연구기관인 HCSS(헤이그 전략연구센터)로부터 "전 세계 군 가운데 가장 소수자 포용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터너 대사는 다양성이 사회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뉴질랜드의 경우 군대 내 다양성이 강화되면서 군의 전체적인 준비 태세와 역량도 개선됐다"며 "포용적인 군에선 사람들이 (자신의 소수자성과 관련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전력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열린 '인종·혐오 차별 대응 주한대사 등 간담회'에선 터너 대사뿐 아니라 벨기에, 캐나다, 핀란드, 뉴질랜드, 프랑스 등 우리보다 앞서 평등법(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시행 중인 나라의 대사들이 대거 참석해 각국의 경험을 공유했다. 이상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참석해 각국 대사들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조를 부탁했다. 이상민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나라에서 여러 부작용과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종교계의 주된 논리"라며 "앞으로 각국 대사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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