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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정말 '걱정하는 엄마 증후군'일까

입력
2021.06.1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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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조금 기다렸다가 화이자나 모더나 맞으면 안 돼요? 곧 들어온다던데." 아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한다.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해 흉흉한 소문이 돌 즈음이라 행여 무슨 일이라도 날까 불안했던 모양이다. 이미 예약을 한 터라 아내도 걱정이 앞서 던져본 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내는 이런 식으로 위험 가능성을 실제보다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아내는 겁도 걱정도 많다. 무난해 보이는 일상에서조차 아내는 위험을 읽어내고 불안해한다. 아이가 밤늦게 밖에 있으면 내내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내가 밖에 볼일이 있다고 하면 미리 걱정부터 한다. 아니 내 아내만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아는 한, 나이와 인종에 상관없이 여성은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자식을 잉태하듯 그렇게 불안과 두려움을 품고 키워간다. 오죽하면 '걱정하는 엄마 증후군(Worried Mom Syndrome)'이라는 용어까지 있겠는가. 대부분의 세상사에 태평하다 싶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초연하다가도 나와 아이들 문제라면, 마치 가족의 안녕을 수호하는 순교자처럼 히스테리컬(?)하게 조바심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지금껏 오해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걱정'과 '근심'을 여성 특유의 속성으로 여기고 아내의 '불합리한' 우려를 '이해하려 애쓰고', 이따금 '참아 넘기는' 전력을 취한 것이다. 그마저 조금 지나치다 싶으면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만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해요? 주사 맞는다고 누가 죽나? 조금 아프다 말 텐데." 그런데... 정말 말이 안 되는 걸까?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가상의 여동생 주디스 이야기를 꺼낸다. 주디스가 아무리 똑똑하고 재주가 많아도 오빠가 학교에서 라틴어와 논리학을 배우는 동안,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스튜를 끓여야 했으리라는 얘기였다. 100년 전의 울프가 400년 전의 주디스를 빌려 자기 얘기를 했지만, 지금 이 순간 더 이상의 울프나 주디스는 없다고 믿는 사람은 바보들뿐이다. 남성이 당연하게 누렸던 만큼 여성은 늘 차별, 성추행, 폭력, 혐오에 시달려 왔다. 그런 세상에서 마음의 병을 키우지 않았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다. 결국 아내가 신경증적이 아니라 내가 이기적이었을 뿐이다. 애초에 사는 공간 자체가 달랐다. 내가 누렸던 세상이 아름다운 '라라랜드'라면 아내를 비롯한 여성의 세상은 꿈에서조차 유령이 나올 법한 '나이트메어'의 세상이다. 그런데도 같은 공간, 같은 세계에 산다고 믿고 아내를 비합리적이라 깎아내리다니. 자기세계를 고수한 채 남을 이해한다는 것만큼 공허한 말이 또 어디 있으랴.

"저를 아세요?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말씀하세요? 제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아세요?" 아내 생각을 하며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꺼내보았다. 차라리 지영의 분노는 모든 여성이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일 것이다. 난 아내의 공간, 세계를 얼마나 알았던 걸까? 기껏 안이한 '남자'의 눈이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밖이 아니라 아내의 세계에 들어가 그 안에서 아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보기로 한다. 어쩌면 여성들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도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한 자신들의 세상보다, 그런 세상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심지어 외면해버리는 나 같은 남자들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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