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네현의 홈페이지에는 'web죽도문제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는 2007년 죽도문제연구회의 연구성과를 보관하고 동시에 활동 상황을 홍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제1기 죽도문제연구회는 다쿠쇼쿠대학 교수 시모조 마사오의 주도로 2005년에 발족되어 시모조 자신이 회장을 맡아 2005년~2007년 2년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그 성과를 중간보고서와 최종보고서 형태로 시마네현 지사에게 제출하였다. 죽도문제연구회는 표면적으로는 독도문제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라는 설립취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영토인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하는 극우단체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그리고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사실을 연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것을 부정하고 사실을 날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시마네현의 '죽도문제연구회'를 해산시킨 한국인
최근 5월 8일자로 재일 독도연구가인 박병섭대표(독도=죽도문제 연구네트 ;일본)는 '죽도=독도문제 네트뉴스' 45호에서 "작년(2020년)3월 말 시마네(島根)현 '죽도(竹島)문제연구회'가 해산되었습니다. 새로운 연구 제목을 찾기가 어려웠던 탓인 듯합니다. 그때까지 좌장을 맡은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는 올해 4월 다쿠쇼쿠(拓殖)대학을 퇴직하고 시마네현립대학 객원교수가 되었습니다. 이제 일본에서 독도연구는 완성기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일본에서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연구자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 논쟁도 거의 끝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독도뉴스도 이번 45호가 아마 최종호가 될 것입니다" 라고 전해왔다. 이글을 보면, 지금까지 박병섭 대표는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해온 시모조를 상대로 논쟁을 벌여 시모조의 주장이 더 이상 설자리를 잃어 죽도문제연구회도 해산되었고, 다쿠쇼쿠대학 교수라는 현직도 정년 퇴임하였기 때문에 박병섭 대표 본인의 역할도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죽도문제연구회는 2005년 제1기가 발족되고 2020년 3월 제4기가 종료되었다. 매번 중간보고서와 최종보고서를 작성하여 그 연구성과와 부수적인 활동 상황을 web죽도문제연구소에 탑재하여 홍보해왔다. 최근 죽도문제연구회의 연구성과는 일본정부(외무성, 내각관방부의 영토주권대책기획조정실)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시모조는 제1기부터 제4기까지 죽도문제연구회의 회장으로서, web죽도문제연구소의 소장을 겸하면서일본정부를 상대로 영토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방정부가 아니고 외교를 담당하는 중앙정부라고 하여 적극적으로 독도 영토화정책를 추진하도록 압박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2년 11월 내각관방부에 '영토주권대책기획조정실'이 만들어졌고, 2019년 1월 도쿄 히비야 공원 내의 시세이회관에 '영토·주권 전시관'을 개관하였다. 또한 외무성은 외교적으로 한국을 향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도발을 수시로 감행했고, 문부과학성은 초·중·고등학교에서 독도의 영유권 교육을 의무화했다. 이로 인해 현재 한일 양국은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외교적 갈등으로 일촉즉발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죽도문제연구회와 web죽도문제연구소는 시모조가 1996년 일본과 한국 양측에 독도가 한국영토가 아니고, 일본영토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시작하여 독도문제에 온몸을 투신해온 성과물이다. 시모조는 맨 먼저 일본측에 일본어로 된 '죽도문제고찰'('현대코리아' 제361호, 2006년5월)을 기고했고, 동시에 한국측에도 한국어로 된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근거는 왜곡되었다'('한국논단'제81호,2006년5월)를 기고하였고, 연이어 '독도논쟁3-증거를 들어 실증하라'('한국논단'84호, 2006년8월)를 기고했다. 그 이듬해에 일본측에 '속 죽도문제 고찰(상)'('현대코리아'제371호, 일본조선연구소 1997년5월), '속 죽도문제 고찰(하)'('현대코리아'제372호, 일본조선연구소 1997년6월)을 기고했다. 독도에 문외한이었던 시모조는 이렇게 해서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후 시모조는 1998년(2회), 1999년(2), 2000년(2회), 2001년(1회), 2002년(2회), 2003년(3회), 2004년(2회), 2005년(1회), 2006년(5회), 2007년(5회), 2008년(1회) 여러 차례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하는 글을 써서 한국은 일본영토인 독도를 불법점령하고 있고, 일본정부는 독도 영토화정책에 소홀하여 '다케시마' 영토를 포기하고 있다고 일본국민을 선동하고,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하는 한국을 비난하였다.
'독도는 한국 땅' 외치는 박병섭 '재일한국인으로 솔직하게 살고 싶다'
일본 현지에서는 박병섭 대표가 시모조의 날조된 논리를 비판하는 독도연구를 시작했다. 맨처음 시모조를 비판한 글은 '시모조(下條)교수의 오독(誤?)'(2000년4월9일)이었다. 그후 2004년(5회), 2006년(2회), 2007년(8회), 2009년(2회) 지속적으로 시모조의 독도 영유권 날조를 반박했다. 박병섭 대표는 2000년에 시작하여 2004과 2007년에 집중적으로 시모조를 비판했다.
시모조가 중심이 되어 죽도문제연구회가 날조한 일본적 논리는 박병섭 대표를 필두로 일본인 연구자 나이또 세이쥬, 이케우치 사토시 등이 합세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제 더 이상 죽도문제연구회를 상대로 날조된 일본 논리를 반박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에 박병섭 대표 본인도 이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박병섭 대표가 죽도문제연구회의 날조된 논리가 거짓임을 밝혀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결국 박병섭 대표는 죽도문제연구회를 잡는 저승사자였던 것이다.
박병섭씨의 연구성과는 일본 인터넷사이트인 '반월성통신(半月城通信)'에 수록되어있다. 박병섭 대표는 '반월성통신'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재일한국인으로 솔직하게 살고 싶다'라는 간단한 이유이다. 이런 입장에서 저는 인터넷 등에서 한국과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다. 어떤 때는 평상시 일본인에게는 가벼운 것 일지라도 재일한국인 입장에서는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또 옛날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흥미 위주로 글을 썼다. 이에 대해 일본인들은 많은 댓글을 달았다. 김명수씨의 도움으로 홈페이지 반월성통신[The HAN World]을 오픈하게 되었다”라고 후기를 남겼다.
'반월성통신'에 의하면, 박병섭 대표의 관심은 '근현대 한일관계사. 독도, 재일한국인, 고대·중세 한일관계사'였다. 그의 연구성과는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를 능가할 수준이었기에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독도연구는 일본에서 발굴한 새로운 1차자료를 토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전문가로 평가된다. '반월성통신'에서 독도연구의 구성은 '반월성(半月城) 발언, 네트뉴스, 일본외무성 비판, 시마네현(島根?) 비판,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 비판, 후나스기 리키노부(?杉力修) 비판, 죽도=독도논쟁(자료집), 연표'로 되어있다. 시모조와 후나스기는 각각 시마네현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죽도문제연구회의 회장과 회원이다.
죽도문제연구회의 연구성과는 web죽도문제연구소에 수록되어있고, 죽도문제연구회가 날조한 일본적 논리를 논파한 박병섭 대표의 독도연구는 '반월성통신'에 수록되어있다. 반월성통신이 존재하는 한 죽도문제연구소가 날조한 일본적 논리는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web죽도문제연구회’의 저승사자는 바로 ‘반월성통신’인 것이다.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하는 일본 현장에서 죽도문제연구회의 시모조를 상대로 고군분투해온 '반월성통신'을 한국의 독도 연구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바로 필자이다. 필자는 1992년-1996년 대학원 석박사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독도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도 독도연구를 지속하는 과정에 우연히 수준높은 최신의 독도연구를 수록한 '반월성통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는 '반월성통신'의 주인공이 누군지 정말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바로 박병섭 대표였다.
박병섭 대표의 존재가 한국에 알려지면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2016년 1월 동북아역사재단이 '제6회 독도학술상'을 수여했고, 2020년 12월 '포항MBC특집다큐 : 재일한국인 박병섭의 독도'가 방영되었다. '반월성통신'이 일본의 인터넷사이트에 존재하는 한, 죽도문제연구회가 날조한 일본적 논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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