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실험’의 결과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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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실험’의 결과를 보고 싶다

입력
2021.06.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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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순식간에 정치생태계 바꾼 이준석 효과
불안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 담아
윤석열도 새 체제의 공정한 룰 감당해야

어쨌든 이준석 덕분이다. 고루한 보수정당이 정치혁신을 이끄는 역동적 이미지로 돌연 바뀐 건. 김웅, 김은혜의 공도 작지 않다. 경선 초기 이들이 함께 큰 흐름을 만들지 않았다면 당 체질상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들이 겁없이 출사표를 던졌을 때 여야를 넘어 우리 정치사의 전환적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봤다. 예견보다는 희망에 가까웠다. 채 한 달도 안 돼 실제로 정치생태계 전체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역성, 계파, 연공서열 등이 당장 야당 대표경선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고, 욕먹어도 효과적이던 억지 흠집내기는 빈약한 밑천의 고백이 됐다.

생태계에 강력한 이종(異種)이 출현하면 주변과 교섭하며 환경 전체를 바꾼다. 이준석이 진짜 건강한 진화종인지는 판단키 이르다. 위험한 편향성이나 엘리트주의에 똑 떨어지는 언변이 덧정 없어 보이기도 한다. 박근혜 탄핵론 같은 절묘한 언명이 내재화한 철학인지, 그저 수재다운 영리한 계산인지도 판단 보류다. 토론 실력만큼의 실행능력도 미지수다.

선거는 대개 가슴의 선택일진대 그는 머리로는 몰라도 가슴으론 안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다. 대놓고 말하면 ‘싸가지 없어’ 보이기 십상인. 그런 그가 태도에 유독 민감한 ‘꼰대’정당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고, 요구도 달라지고…. 비로소 정치가 이 새로운 변화에 조응하기 시작했다는 징표다.

변화의 시작은 사실 김종인이었다. 광주에서 사죄하고 경제민주화나 약자 보호 등의 주장을 통해 고루한 이미지를 상당부분 털어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해찬 등 막강 중진원로들을 쳐냈듯 국민의힘에서도 영남권 중진들을 강력히 제어하면서 계파와 지역색을 벗겨냈다. 이런 사전 정지작업이 없었더라면 이준석 등의 반란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다. 김종인의 개혁이 개인기라면 이준석은 이를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변화로 만들 책임이 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유불리 타산에 익숙한 당 주류는 어떻게든 새 대표체제를 흔들며 권토중래를 도모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 정도의 문제조차 정치적 산법으로 다루는 모습은 이 당 체질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결국 당대표가 된들 우군 없는 그가 믿을 건 일관되게 주장해온 공정, 원칙, 미래 가치뿐이다. 그 가치 실현을 위해서는 싸가지 없다는 얘기를 더 들어도 좋다. 그가 지핀 당 혁신의 불씨를 키우지 못하면 그의 약점들은 대중정치인으로서의 기반 자체를 허물 것이다.

당연히 윤석열도 공정게임의 룰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당 중진들마다 거의 목을 빼는, 사실상 추대 분위기는 그로선 독일뿐더러 정치생리상 믿을 것도 못 된다. 어찌어찌 후보가 된들 본선까지의 험로를 이겨낼 수도 없다. 공정이 시대정신이라면 윤석열도 다름없이 그 과정을 견뎌야 한다. 아직은 이미지뿐인 그가 현실정치인으로서 이준석 체제의 시험을 통과하는 그때가 진짜 별의 순간일 것이다.

이준석 효과는 이미 민주당도 바꾸고 있다. 송영길 체제에서 겸손, 반성, 합리 모드로 급변하고 있고, 열성 지지층의 장악력도 이전 같지 않아졌다. 신예급인 박용진이 유력 대권후보로 오르면서 일찌감치 미래에 천착해온 이광재 등 중도실용 후보들도 재평가받을 여지가 넓어지고 있다. 결국 생태계가 바뀌어야 경쟁하고 공생하는 방식이 바뀌는 법이다.

물론 오늘 국민의힘 대표경선에서 이준석의 당선을 상정한 글이다. 만약 아니면 모처럼의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다.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한국정치 3.0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설마 그런 일은 생기지 않길 바란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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