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금융 접근성 높여줄 것" 기대
대미 갈등 대비 권위주의 정권 고육책
세계 최초로 엘살바도르에서 법정통화로 승인받은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격이 하루 사이 폭등했다. 엘살바도르의 불안한 정치ㆍ경제 환경 탓에 물가가 급등하고 비트코인이 돈세탁에 악용될 여지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트코인 가격은 10일 오전 8시 38분 기준 글로벌 가상화폐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서 전일보다 12% 상승한 3만7,467달러(4,185만원)에 거래됐다. 국내 거래소 업비트에서는 4,351만4,000원으로 전일보다 13% 올랐다.
이 현상은 전날 엘살바도르 의회에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된 데 따른 것이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앞으로 일상생활에서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거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다. 비트코인 법정통화화를 추진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단기적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도 금융권 밖에 있는 사람들의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이 국민의 70%나 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 안착하면 멕시코 같은 인접국들도 가상화폐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걱정이 더 크다. 가장 큰 문제는 가상화폐의 큰 변동성이다. 일시적으로 경제 활동을 부양하더라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면 재정 적자가 심각한 엘살바도르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일 게 분명하다. 통제 불가능한 불안정성 탓에 엘살바도르 정부가 1년 가까이 공들인 국제 지원도 막힐 수 있다. 카를로스 아세베도 전 엘살바도르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룰렛(도박 기구)을 하는 것과 같다”며 “카지노에서 대출 일부가 손실되면 누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비트코인 법정통화화는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부켈레 정권의 고육책 성격도 있다. 부켈레 대통령은 최근 미주기구(OAS) 주도로 설립된 부패방지위원회와 단절하고 자신의 뜻에 반하는 헌법재판관ㆍ법무장관을 교체하는 등 권위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외교의 우선 가치로 내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압박에 대비하려면 미국 달러화 외에 다른 자금줄이 필요하다. 2001년 자국 통화 콜론을 폐기하고 미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하면서 엘살바도르의 대미 의존도는 심화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상화폐를 법정통화로 채택하면 (미국의) 잠재적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비트코인이 부패 자금과 돈세탁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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