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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사워크라우트의 위기… 발효문화가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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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사워크라우트의 위기… 발효문화가 사라져 간다

입력
2021.06.10 14:3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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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발효과정을 무서워하게 됐다. 음식물을 냉장고 밖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기게 됐다. 미생물을 이용하는 기술, 가정마다 전승되던 비법은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발효과정을 무서워하게 됐다. 음식물을 냉장고 밖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기게 됐다. 미생물을 이용하는 기술, 가정마다 전승되던 비법은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한국에 김치가 있다면 독일에는 사워크라우트가 있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채소요리들은 양국의 거리가 무색하게 형제처럼 닮았다. 제조 과정은 물론이고 맛도 비슷하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유산균이 자라나 신맛을 내기를 기다리면 어느새 시큼새콤하고 아삭거리는 반찬이 탄생한다. 식품을 오래도록 보관하려던 인류가 지역을 뛰어넘어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바로 발효의 발견, 발효문화의 탄생이다. 발효문화는 인류가 자리 잡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다.


발효문화의 위기… 직접 담그는 가정 줄어들어

그러나 오늘날 발효문화는 위기를 맞았다. 발효식품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 가정마다 전승해온 문화와 기술은 맥이 끊길 처지다. 대신 발효식품은 멸균된 공장에서 제조돼 식료품점으로 배달된다. 냉장시설을 갖춘 수송수단도 등장한다. 사다 먹는 편이 편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냉장고가 발명되고 식품 가공기술이 발달하면서 발효는 점점 ‘위험한 것’ 또는 ‘가정에선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돼 간다. 미생물을 식품에서 번식시켜 사람에게 유용한 유기물을 만들어낸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상상인가.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한 발효 연구자 샌더 엘릭스 카츠는 1999년 사워크라우트 만들기 연구회를 처음 진행하면서 발효에 대한 대중의 무지와 두려움을 체감했다. 많은 사람이 대단한 전문가들만 미생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냉장고 바깥에서 묵어가는 음식을 끔찍이 두려워하는 풍토가 우리 문화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회상하면서 수천 년 동안 가정과 공동체에 전해져 내려왔던 비법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경고한다.

요구르트를 현미경으로 촬영하니 우유 고형분 사이로 보라색 박테리아가 보인다. 길쭉한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가 락토바실루스 델브루키다. 짧은 막대 모양은 불가리쿠스, 동그란 모양은 스트렙토코쿠스 살리바리우스 아종 서모필루스다. 발효는 원하는 미생물을 번식시키고 잡균은 죽이는 과정이다. 글항아리

요구르트를 현미경으로 촬영하니 우유 고형분 사이로 보라색 박테리아가 보인다. 길쭉한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가 락토바실루스 델브루키다. 짧은 막대 모양은 불가리쿠스, 동그란 모양은 스트렙토코쿠스 살리바리우스 아종 서모필루스다. 발효는 원하는 미생물을 번식시키고 잡균은 죽이는 과정이다. 글항아리


인류와 발효는 함께 탄생

카츠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인류는 태어나던 시점부터 발효와 함께해왔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많은 사람이 박테리아를 무서워하지만 인간의 장에는 유산균을 비롯해 100조 개에 이르는 박테리아가 서식한다. 이들은 인간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영양소를 파괴하는 한편, 비타민B처럼 인체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생산한다.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와 경쟁해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도 한다. ‘미생물이 사람에게 유용한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발효의 과정은 인체에서부터 나타난 셈이다. 카츠는 인류가 동식물을 먹으면서 진화해왔기에 미생물과 다세포 생물이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의 역사는 동식물은 물론, 그들의 미생물 동반자까지 아우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발효’를 의식하고 이용하게 됐을까? 동물들이 발효된 열매를 먹고 알코올에 취하는 모습에 실마리가 있다. 정글의 동물들은 열매가 익는 냄새에 민감해 이를 먹으려 줄줄이 나타나는데 발효된 열매를 먹고 이상 행동을 보인다. 원숭이들은 둔해지거나 운동능력을 잃고, 박쥐는 땅바닥에 떨어져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9,000년 묵은 도자기 파편에서 알코올 잔류물을 채취했던 인류학자 패트릭 E. 맥거번은 “현생 인류의 모습을 뚜렷이 갖추기 시작한 10만 년 전, 우리는 이미 발효음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열매를 어디서 따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류가 탄생한 시점부터 발효를 이용해 술을 만드는 법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 샌더 엘릭스 카츠 지음ㆍ한유선 옮김ㆍ글항아리 발행ㆍ936쪽ㆍ4만9,000원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 샌더 엘릭스 카츠 지음ㆍ한유선 옮김ㆍ글항아리 발행ㆍ936쪽ㆍ4만9,000원


발효문화가 없는 지역은 없어

이러한 주장들에 따르면 인류는 발효를 발명했다기보다는 발견했다. 이러한 자연현상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남아도는 식량과 발효 방식, 저장하는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풍부하게 자라는 동식물에 따라서 그곳에서 발달하는 미생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쌀과 수수가 많이 났고 곰팡이균이 그 복합탄수화물을 알코올 발효에 필요한 단당으로 분해했다. 한편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는 수수와 밀이 많이 났고, 중국과는 매우 다른 방식인 발아법을 통해서 발효에 필요한 당분을 추출했다.

기후 역시 발효문화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추운 지역에서는 발효음식이 없으면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바다의 얼음이 녹는 여름이면 물고기나 새를 잡아서 구덩이에 파묻고 몇 달 동안 발효시켰다. 이후 겨울에 식량이 부족하면 이를 꺼내먹는 것이다. 이와 달리 열대 지역에서는 부패를 막기보다는 미각을 돋우는 수단으로 발효를 이용했다. 어차피 식품이 빨리 부패했기 때문이다.


발효문화의 회복은 곧 공동체의 회복

카츠는 지구상의 온갖 발효식품을 연구해 기록으로 남겨왔다. 김치와 막걸리부터 미국의 그리츠, 동유럽의 콤부차, 인도네시아의 템페까지… 그의 관심은 대륙을 넘나든다. 그것들이 어떤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했고 발효기법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분석한다. 수돗물의 성분 변화가 발효에 미치는 영향까지 연구 대상이 됐다. 발효문화가 이대로 사라지도록 두지 않겠다는 의지, 그 문화를 지탱해온 공동체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기록에 배어 있다. 카츠는 방대한 기록을 마치며 부탁한다. “집에서 사워크라우트를 꼭 만들어 보세요”라고. 그것이 발효문화와 공동체를 되살리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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