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수사 시인… 담당 경사 '특수직무유기' 송치
서초서 지휘라인 간부엔 "혐의 불명확" 내부 감찰
경찰 안팎 수사 청탁·압력 의혹도 전면 부인
법조계 "경찰 조사 타당성, 검찰 단계서 증명돼야"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처리 과정을 자체 진상조사해온 경찰이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확인하고도 묵살한 수사관을 검찰에 송치했다. 부실수사 의혹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사건이 상급기관에 보고됐다거나 경찰 안팎에서 부당한 수사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간부들은 내부 감찰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경찰이 '셀프 조사'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실수사 사실상 인정… 담당 수사관 송치
서울경찰청 청문·조사 합동 진상조사단은 9일 오전 종로구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사건 담당 수사관이었던 서울 서초경찰서 소속 A 경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또 이 전 차관은 증거인멸교사 혐의, 택시기사 B씨는 증거인멸 혐의로 각각 송치하기로 했다.
진상조사단은 서초서가 이 전 차관 폭행 사건을 내사 종결하는 과정에서 포착된 부실수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1월 24일 꾸려졌다. 이후 137일간 휴대폰·PC·서초서 폐쇄회로(CC)TV 포렌식, 8,000여 건의 통화내역 분석 등을 기반으로 △이 전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전반 △사건 처리 과정의 적정성을 조사했다.
부실수사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A 경사는 그간 알려진 혐의가 대체로 인정됐다.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사건 당일인 지난해 11월 6일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이 전 차관이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나, A 경사는 사흘 뒤인 9일 오후 1시 50분쯤 반의사불벌죄인 형법상 폭행 혐의로 죄명을 바꿨다. 이 전 차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 후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 4시간 뒤였다.
A 경사는 같은 달 11일 오전 9시쯤엔 B씨를 통해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압수나 임의제출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못 본 걸로 하겠다"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 경사는 지난해 12월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뒤 진행된 자체 진상 파악 과정에서도 영상 열람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 전 차관에겐 증거인멸 교사 혐의가 적용됐다. 이 전 차관이 피해자 B씨에게 합의금 조로 건넨 1,000만 원에 대해 블랙박스 영상 삭제 요구의 대가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이 B씨에게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한 것 역시 영상 삭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경찰 관계자는 "B씨는 피해자이고 증거 인멸 행위가 가해자 요청에 따른 것이란 점을 참작 사유로 덧붙일 예정"이라고 했다.
서초서 지휘라인 간부들은 감찰에
당시 A 경사의 보고라인에 있던 서초경찰서 서장(현 서울청 수사과장), 형사과장, 형사팀장은 보고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범죄수사규칙상 변호사의 범죄는 상부에 보고해야 할 '중요사건'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서울청 등 상급기관에 보고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이들이 지난해 11월 9일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자로 거론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같은 해 12월 서울청의 진상 파악 과정에서 "평범한 변호사로 알았다"고 허위 보고했다고도 지적했다. 또 이들의 휴대폰을 포렌식한 결과 통화내역 일부를 삭제한 정황이 공통적으로 드러났고, 일부는 안티포렌식 앱을 설치한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 사건의 내사 종결이 A 경위의 '단독 판단'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이들을 포함한 상급자들은 검찰 송치 대상에서 제외했다. A 경사가 폭행 영상에 대해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고, 서초서와 서울청 사이에도 생활안전(생안) 부서 간 비공식 정보 공유만 있었을 뿐 서울청 수사부에 보고된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 수사에 외압이나 청탁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경찰 관계자는 "포렌식 분석 결과 이 전 차관이 전현직 경찰관과 통화한 내역은 나오지 않았으며, 이 전 차관의 통화 상대방 역시 서초서장 이하 사건 담당자는 없다"고 밝혔다. 서초서 관계자들의 휴대폰 기록 삭제 정황에 대해서는 "삭제 패턴이나 분량으로 볼 때 의도성이나 사건 관련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꼬리 자르기 아니냐" 의심도
경찰은 대신 상급자로서 사건 처리 과정에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세 사람을 상대로 경찰청 차원의 감찰을 진행할 계획이다. 형사과장과 형사팀장은 경찰수사심의위원회에도 회부된다. 두 사람은 A 경사와 함께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입건됐던 이들이다. 처분이 갈린 이유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A 경사는 블랙박스 영상 확인 후 조치하지 않은 점이 확인됐지만, 두 사람은 영상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해 혐의가 불명확하다"며 "그럼에도 (불송치) 판단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의위원회에 회부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등에서는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전 차관이 당시에도 유력 인사였던 점을 감안할 때 일개 수사관이 상부 보고 없이 해당 사건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는 결론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A 경사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가 될 수 있다"며 답하지 않았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 전 차관 정도의 인물은 윗선으로 보고가 안 됐다는 게 비정상적인 것"이라면서 "경찰 조사의 타당성 여부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검찰 수사 단계에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피의자가 심의위원회에 회부된 것에 대해서도 "심의위원들은 경찰이 제공한 자료로만 판단해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내고 "서울경찰청장이나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라인을 통해 외압이나 부정 청탁이 있었는지가 추가로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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