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BI·호주 연방경찰 개발한 앱 이용
세계 18개국 9,000명 수사 인력 공조
세계 곳곳의 범죄단체 조직원들이 미국과 유럽, 호주 등의 수사당국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지며 덜미를 잡혔다. 높은 보안성으로 최근 3년간 어둠의 세계에서 명성을 떨쳤던 애플리케이션(앱)이 사실은 미 연방수사국(FBI) 주도로 만들어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적군 속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단숨에 제압한, FBI판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FBI와 유럽연합(EU) 경찰기구인 유로폴, 호주 연방경찰 등이 ‘아놈(ANOM)’이란 이름의 암호 메신저앱을 이용해 800명 이상의 조직범죄 관련 용의자를 검거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앱은 지난 2018년 FBI와 호주 경찰이 공동 기획한 이른바 ‘아이언사이드(Ironside)’ 작전을 위해 개발됐다. 범죄 조직원들이 이 메신저를 쓰도록 유도해 전 세계 마약 거래와 돈세탁 범죄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다.
당시 호주 경찰은 신분을 속이고 유명 마약 밀매업자 하칸 아이크에게 접근한 뒤, “메시지를 암호화할 수 있는 안전한 소통 수단”이라면서 아놈 앱을 소개했다. 사용을 위해선 기존 이용자 추천이 필요하고, 암거래 시장에서 구매한 특수 전화기가 필요했다. 진입 문턱이 높고 사용료도 6개월간 2,000달러(약 223만 원)로 비싼 편이었지만, 보안성이 워낙 높은 데다 철저하게 ‘아는 사람’들끼리만 쓰는 것이라는 이점 탓에 범죄 조직의 인기를 끌게 됐다. 3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100개 국가에서 300곳 이상의 범죄 조직, 인원 수로는 무려 1만2,000명이 해당 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게 유로폴의 설명이다.
조직원들은 아놈 메신저를 통해 마약 밀매ㆍ수송 정보와 돈세탁 방법은 물론, 살인 음모까지 주고받았다. 그러나 FBI가 3년간 대화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점은 까맣게 몰랐다. 그 결과, FBI와 유로폴 등은 최근 18개국 9,000명의 수사 인력과 함께 이들을 일망타진했다.
예컨대 에콰도르의 한 참치 회사는 참치 대신 마약을 아시아와 유럽에 공급하다가 검거됐다. 또 다른 남미 범죄 조직은 마약 밀수를 바나나 수출로 위장하다가 적발됐다. 벨기에 수사당국도 이 앱에서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 1,523㎏의 코카인을 압수했다. 호주에선 일가족 5명에 대한 살해 모의 등 21건의 살인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남미 마약 카르텔과 아시아 삼합회, 중동ㆍ유럽 범죄 조직 관련자들이 줄줄이 검거됐다”며 “코카인 8톤, 마리화나ㆍ해시시(압축 대마) 22톤, 메스암페타민(필로폰) 2톤, 총기 250정, 4,800만 달러(535억 원) 상당의 현금과 암호화폐가 압수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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