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생명체가 갑자기 등장한다. 거미 형상으로 덩치는 사람보다 2, 3배 크다. 다리가 길쭉길쭉하고 발끝은 칼날 같다. 자동차 속도로 움직인다. 다리를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총알에도 끄떡없다. 사람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다.
허점이 하나 있긴 하다. 시력이 발달하지 못했다. 민감한 청력으로 사람의 위치를 파악한다. 숨죽이고 있으면 괴생명체로부터 안전하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대화 없이 주변사람들과 소통은 할 수 있을까, 소리 없이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갑자기 다치면 비명을 참을 수는 있을까, 아기가 태어날 때는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는 ‘소리 내면 죽는다’는 독특한 설정에다 높은 완성도로 영화 팬들의 마음을 샀다. 한국 흥행 성적은 52만 명에 그쳤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3억3,5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제작비(1,700만 달러)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6일 개봉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2’는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속설을 뒤집는다.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숨죽이게 만든다. 심장을 움켜쥐는 서스펜스와 빠른 전개, 통쾌한 결말에 97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전편처럼 애보트 가족이 스크린 중심을 차지한다. 전편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장면들이 도입부를 장식한다. 주변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평화롭던 일상이 괴생명체 등장으로 깨지게 된 과정을 묘사한다. 이후 전편을 잇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버지 리(존 크래신스키)를 잃은 애보트 가족은 더 이상 은신처에서 살 수 없다. 괴생명체가 출몰하는 세상에서 가족에게 안락한 둥지 역할을 했던 농장은 불에 탔고, 물에 잠겼다. 가족은 계곡 너머 불꽃을 보고 새 거주지를 찾아 나선다. 퇴락한 제강공장에서 예전 친밀하게 지냈던 중년 남자 에밋(킬리언 머피)을 만나며 이야기는 본궤도에 오른다.
애보트 가족은 다른 이들에 비해 살아남기가 그나마 수월하다. 딸 레건(밀리센트 시몬스)이 청각장애가 있어서다. 가족이 수어에 익숙하니 소리 내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하다. 게다가 레건의 보청기를 활용해 괴생명체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다. 레건은 자신이 알아낸 방법으로 괴생명체를 퇴치할 수 있다 생각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영화는 애보트 가족에 대한 괴생명체의 공격에다 레건의 모험을 포개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영화는 ‘침묵의 공포’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어떤 소리를 낼까 봐 긴장하고 손을 꽉 쥐게 된다. 인물들이 어쩌다 잘 못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낼 때 벌어질 일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배우 겸 감독 존 크래신스키가 전편에 이어 메가폰을 잡았다. 에밀리 블런트는 그의 아내다. 밀리센트 시몬스는 실제로 청각장애가 있다. 북미 지역에서는 개봉(지난달 28일) 첫 주 4,754만7,231달러를 벌어들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고 기록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평소에는 소음이라 생각할 수 있는 생활 속 여러 소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의 행복을 깨닫는다고 할까. 15세 이상 관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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