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무대를 해왔지만, 이 작품처럼 큰 벽에 부딪혀보긴 처음이었어요."
배우 유준상이 뮤지컬 '비틀쥬스'를 마주한 뒤 느낀 솔직한 소회다. 공연을 준비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했다는 그의 고백에 귀가 쏠렸다.
유준상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비틀쥬스' 개막을 앞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틀쥬스'는 지난 2019년 4월 브로드웨이에서 공식 개막하며 첫 선을 보인 뮤지컬로, 무려 250억 원을 투입한 화려한 무대와 다채로운 볼거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열풍을 몰고왔다. 이는 같은해 브로드웨이 3대 뮤지컬 시어터 어워즈 수상을 휩쓸며 탄탄한 저력을 과시했다.
이처럼 브로드웨이를 뜨겁게 달군 '비틀쥬스'는 오는 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전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막을 올린다. 스펙터클한 볼거리는 고스란히 살리되, 한국 고유의 정서를 덧입혀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출격 준비를 마친 '비틀쥬스'에 뮤지컬 팬들의 기대가 모이는 중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안되겠구나"
유준상은 이번 작품에서 98억년 묵은 '저 세상 텐션' 무면허 저 세상 가이드 비틀쥬스로 분한다.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로의 변신에 기대가 쏠렸지만, 그 도전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오랜 시간 무대에 올랐지만 이번 작품처럼 어려웠던 작품은 처음이었다고 털어놓은 그는 "'이게(작품이) 이렇게 어려웠나,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이야기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지' 싶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벽에 한 번 부딪혀 보니까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기초부터 다시 잡기 시작했죠. 결국은 기본이 돼야 공연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1부터 시작하는 과정들이 제게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시간은 촉박한데 보여줘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연습을 했었죠."
유준상이 밝힌 연습의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치열했다.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전체 대사를 외우고 흐름을 외웠을 정도로 '비틀쥬스'에 오롯이 빠져들고자 쉴틈 없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27살에 처음 '그리스' 주인공을 맡으면서 밤새도록 연습했을 때 생각이 났을 정도로 정말 치열하게 연습했어요.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또 유쾌하게 전하는 것은 결국 타이밍 싸움이다 보니 그 타이밍을 만들어가고자 반복되는 훈련을 거듭했었죠. 그 3~4주간의 시간이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제 스스로도 너무 힘들었던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장벽이 거둬지면서 '이렇게 해나가면 되겠구나'라는 포인트가 생기더라고요. 결국 '내가 미치지 않고서는 이 공연을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치지 않고서는 이 느낌과 템포를 전달해드릴 수 없다 싶어서 훈련을 거듭한 끝에 얻은 결과죠. 이 작품이 제게는 또 다른 것을 시작하게 되는 중요한 기점인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준비한 걸 관객 여러분들께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젠 좀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웃음)"
"인생 최저 몸무게, 66.5kg"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유난히 핼쓱해진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앞서 OCN '경이로운 소문' 출연 당시 한 차례 몸무게를 감량했던 그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인생 최저 몸무게를 경신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체력 관리요? 저도 지금 걱정이에요. 사실 '경이로운 소문' 때는 안 먹고 만들었던 몸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먹는데도 아침마다 몸무게를 재 보면 살이 빠져 있더라고요. 가장 힘들었던 3~4주 동안은 제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었죠. 그 때는 66.5kg까지 살이 빠졌었어요. '경이로운 소문' 때가 67.5kg 정도였는데, '와 여기서 더 빠지면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한동안 연습에 매진하느라 거의 먹지도 않다가 이제 조금씩 먹고 있는데 그래도 살이 안 쪄요. 지금은 근육은 다 빠지고 배에 왕(王)자 복근만 남아있는 상태에요. 근육이 다 빠져도 그건 남아있더라고요. 하하"
'비틀쥬스'의 대본을 처음 받아본 순간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할 수 있을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는 그는 체력 관리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불태우기도 했다.
"오래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체력적으로 오래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이제 막바지 연습까지 온 상황에서는 체력 관리만 잘하면 60살까지는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안무가 많아서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열심히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이걸 무대에서 한다고?"
'비틀쥬스'의 첫 공연이 단 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유준상이 꼽는 한국 '비틀쥬스'의 매력은 무엇일까.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공연의 제작비가 무려 250억 원이 투입된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 했는데, 상상 초월이었죠. 저도 아직 완성된 무대는 못 본 상태고, 왕 뱀에 한 번 타 본 정도인데 저도 너무 설레요. 처음엔 '이걸 무대에서 구현한다고? 어떻게 하지?' 했는데 그걸 구현하니까 이걸 배우로서 너무 신나고 설레더라고요. 아마 서커스를 보는 느낌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무대 위에서 제가 손 한 번 치면 모든 것이 다 바뀌어 있을 정도니까요. 이번 작품은 아예 처음부터 보는 재미로 승부를 던진 거라,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나온 뮤지컬을 통틀어서 최고의 시스템을 갖췄다고 해요. 국내 제작사 역시 그 장비에 버금가는 무대를 갖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줬고요. 분장 역시 기대하실만 해요. 비밀인데, 저조차도 분장을 하면 제 모습을 못 알아 볼 정도에요. '이게 나야?' 싶더라고요. 아마 진짜 '저 세상 텐션'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고 있어요."
이어 유준상은 '비틀쥬스'가 전할 메시지의 힘도 강조했다.
"마지막 메시지가 굉장히 단순한 메시지인데, 그 단순한 한 줄을 전달하려고 2시간 30분을 무대에서 죽을 힘을 다 해서 달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 메시지를 전달할 때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울면 안되는데, 눈물이 차올랐어요. 아마 그 메시지가 주는 울림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걸 겪고보니 '이 메시지만 잘 전달한다면 이 공연을 통해서 관객분들이 티켓값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어가실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마지막 한 마디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이야기니,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근래에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 있었을까 할 정도로 큰 활력소를 얻고 가시는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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